예람이에게 | 물길

이야기들

by 이제월

본래 모든 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아닌 것은 사람의 것이 아니고 사람은 결코 그것을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답니다. 고대 희랍인들은 이걸 뮈토스(μῦθος, mŷthos)라고 하였어요. 로마인들이 쓰는 라틴어는 이걸 받아서 미쓰(myth)라고 하였고요. 영어도 이 말을 그대로 이어 썼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 일본인 번역가들이 이를 ‘신화’(神話)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냥 이야기(story)예요.


이야기에 처음 분화가 일어난 건 역사(歷史)입니다. 헤로도토스가 『히스토리아』《Ἱστορίαι》(Historiai)라는 책을 쓰면서부터죠. 본래 ἱστορία (historia)는 조사하고, 탐구하고, 뭔가 알아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어 동사 ἱστορέω (historeō)가 묻다, 조사하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다 따위의 뜻을 가지고 있거든요.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책 『히스토리아』 즉, 『역사』에서 자신이 듣고 그리스세계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 가운데서 직접 찾아가서 그 흔적을 찾거나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만 하겠다며 이를 구분한 것입니다. 서문에서 직접 밝히고 있지요.

그리스-로마인들은 또한 로고스(λόγος, lógos)를 따로 분리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성경에서 ‘말씀’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현대 유럽어에서 이 말이 어미로 붙으면 관련 주제, 분야의 ‘학’ 즉, 학문(學問)을 가리키게 되었지요. 요한복음 제1장이 맨처음 로고스가 있었다는 말로 시작되지요. 그런데 성경의 중국어 번역본 중에는 로고스를 흔히는 도(道)로 옮기지만, 초기 번역 중 일부가 회로(回路)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돌고 도는 길입니다. 어떤 경로가 있어 그리로 다니는데 그 길이 막연하게 퍼지는 게 아니라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제자리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앞뒤가 딱 맞아 계속 그 길을 돌게 되는 겁니다. 로고스는 ‘논리’(logic)인데, 예, 돌고 돌아 설명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합리(合理)라고 하지요. 이성에도 합하여, 다시 말해 인간정신이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한단 말입니다(reason-able). 다분히 인간적입니다. 즉, 이성적이란 말은 인간에게 설명 가능하다, 인간정신에 편안하고 어울린다는 말입니다.

이야기 중에 ‘역사’가 떨어져 나간 이래 계속 분화가 일어나서, 특징을 콕 집을 수 있는 갖은 ‘한정된 이야기들’이 특별한 이름을 달고 분리되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그 부분들의 합은 전체가 될 수 없고, 전체의 곳곳에 스며서 나머지 모든 이야기들의 어머니 또는 구조[matrix] 역할을 하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이름을 갖지 못한 이야기 자신인 이야기, ‘신화’입니다. 신들의 이야기,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성이 편안하게 받아들이진 않지만 스스로 낳고, 스스로가 거기서 태어나는 인간의 이야기가 신화인 겁니다. 뮈토스.


아마도 수요일에는 뮈토스, 히스토리아, 로고스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딱 그렇다고는 못하지만 말이예요. 오늘은 말이 길었습니다. 햇살을 즐기기 바랍니다. 방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 우리는 신화의 일부가 됩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생기가 차오르는 걸 느낄 터입니다. 나가세요.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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