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나무야

벽과 문

by 이제월


살면서 벽에 부딪친다고 느끼는 일이 있습니다.

그 느낌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벽이 없다면 문도 없습니다.

벽 없는 문은 장식이나 허구입니다. (장식도 허구입니다.)

사실 문 자체가 얇든 두껍든 [움직이지 않는] 벽에 둘러싸인 [움직이는] 벽입니다.

물론 벽을 뚫어 둠으로써 문의 기능을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의 본질은 그것이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내가 움직이느냐이고

벽의 본질은 그것이 꼼짝 않느냐가 아니라 내가 움직일 수 없느냐입니다.


아무튼 벽을 마주친다면

문과 이어지는 어딘가에 닿은 것입니다.

벽을 떠나지 말고

벽을 따라 가십시오.

벽을 더듬고 두드리십시오.

미닫이인지 여닫이인지 같은 것 모르니까

남의 말을 듣거나

자신의 희망 또는 두려움이 아니라

신중한 용기와 끈질긴 충실함에 기대십시오.

밀고 당기고

잡히거나 다른 게 있는지

혹은 더 세게 밀어야 하는지

손을 대고 잠시 물러서 기다려야 하는지

골고루 다 해 보십시오.


당신만의 방식, 의례가 설 것이고

고유한 식별법도 갖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내 모든 노력은

마주하여 생긴다는 것.

그대가 하는 식별은 아무렇게나 생긴 배열이 아니라

벽문(壁門), 모든 사물의 껍질과 속을 드나드는 길의 이치에

나를 맞출 줄 아는 데서 얻게 됩니다.

내가 아니라 ‘너’가 중심입니다.

그러면 나는 비로소 자유롭고, 비로소 나다운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삶도 비로소 내 것으로서 운위(云爲)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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