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대지

우리는 외롭지 않다

by 이제월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었죠.

죽은 사람들하고 사귀어야 한다고.

만일 정말로 죽기만 한 사람이면 만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생의 수단을 하나 가지고 있지요.

개인적 기억을 통한 자취의 연장 말고

제한적이지만, 어쩌면 도리어 군더더기 없이 핵심과 본질만 전달하는,

그러면서도 풍부하고 무한히 확장하여

한 생애에서 이를 수 없는 데까지 이르고

무수히 전생(轉生)하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

말이 통하는 이에게 뜻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니체를 빌려 표현하자면 ‘영혼의 수정(受精)’도 가능합니다.

<슈퍼맨 리턴즈>의 대사를 빌리자면,

아들은 아버지가되고,

아버지는 아들이되지.

넌 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난 네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지” 같은.


그러므로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벗이 되어줄 차비를 마친 많은 이들이

내 편의 준비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때로 위대하고

때로 소박합니다.

아니, 대부분 둘 다입니다.


그들의 몸은 썩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땅의 일부가 되었고

대지는 그들로 인해 생명을 나누어 줍니다.

우리는 그들을 마시고

그들을 숨 쉽니다.


가장 근원적인 윤회(輪廻)는

우주의 총합은 결코 변하지 않고

상(相, 象)을 바꿀 뿐이라는 것입니다.

빅뱅 순간의 입자들과 지금의 입자들, 에너지 사이에 다른 건 없습니다.

모두 똑같고

남김없이 다릅니다.


이 같고 다름이

생명의 살이, 생애입니다.


애초에 혼자인 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외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인데도

혼자일 수 있다는 기적의 발현인 것뿐입니다.


아무튼 저 대지의 음성을 나누어 봅시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이든 불교나 유교의 경전이든, 도가의 경전이든 가지고서요.


비가 옵니다.

이런 날은 음이온이 가득하다는데, 그럼 본래 기분이 좋아진다는군요.

우울해진다는 건 어떤 식으로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날 소리는 안으로 파고든다는 겁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밖으로 퍼지는 대신 공간 안으로 스미고

한 사람의 정신 안으로 스밉니다.


좋은 소리를 켜세요.

이럴 땐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를 신나게 누려 봅시다.

비오는 날엔 역시,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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