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點). 찍기 혹은 찍은 것
점(點)은
없는 것에 대하여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작은 것입니다.
현실하는 점은 아주 작은 길이와 면적, 두께, 색깔, 무게와 굳기, 거칠기 등을 모두 갖겠으나
그것은 이미 거대한 공, 구(球)인 것이고
기하학적 점, 이념으로서 점, 현실하는 점을 점으로 만드는 원천은
무게도 없고, 색깔도 없고, 다른 어떤 물리적 특성도 없이
자신임을 주장하는 다른 어떤 특성도 갖지 않고 오직
‘위치’만을 갖습니다.
거기에-있다.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있다.
이보다 더 큰 것을 나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점을 찍는 것은 이를 테면
무질서를 멈추는 일입니다.
무언가 지정(指定)되었습니다.
무언가 위치를 부여받았습니다.
이제 무언가 한 것이고
이제 이 우주, 전체 시공간은
돌이킬 수 없게 달라졌습니다.
그대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
거창하지 않고 단순한 한 가지
점을 찍는 것입니다.
아니면 점이 되는 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주를 송두리째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영원토록
전부 바꾸어 버릴 수 있을까요?
멈춤.
당신은 그저 멈출 따름입니다.
멈추면 되어요.
고요한 그것은
특이점을 형성하고
그리로부터 전에 없던 흐름이 시작됩니다.
일상으로, 생활의 감각으로 말하자면
단지 멈추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볼 수 없던 것이 드러나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침묵하던 것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빛깔이 너울대고
형태가 너울을 벗고 모습을 드러냅니다.
삶이, 죽음이
서로 속닥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심장소리가
처음에는 내 심장이
하지만 곧 다른이들의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래서 점은 음표입니다[punctum].
롤랑 바르트는 단지
멈추려고, 점을 찍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면 사진은
단순한 복제, 베끼기나 훔치기가 아니라
창조한다는 것을
멈춘다는 건
반드시 흐름을 바꾼다는 것
만든다는 것을
그는 알아보았습니다.
다른 누구라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사진 앞에서
알아본다는 것을
그는 알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점은,
한 점은
창조의 점이며
소멸의 점이며
영원의 점입니다.
그대가 생각해야 할 때
그대가 비로소 자신이려 할 때
혹은 더는 나라거나 너라거나 하지 않고
그저 전부이고 싶을 때
단 하나의 위치를 부여하십시오.
무얼 더하는 게 아니라
멈추면 됩니다.
그저 멈추고
듣는 자가 되십시오.
당신은 하느님
세계를 낳습니다.
세계가 자신을 열어 젖히고
비로소 처음 자신을 마주합니다.
생각이
아무것도 아닌 영원에서
별것도 아닌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점을 본 사람은
자신도 멈추어
자격을 획득하는 사람은
찰나라도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발견하고
이마에 새깁니다.
첫 번째 할 일
— 멈춤.
그대가 점을 찍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뭐,
껌이예요.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