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鬪聖)과 석불(石佛)
역사라는 게 여러 면모가 있어요.
오늘날 역사학은 큰 줄기를 보는 것보다
— 어쩌면 그건 많이 했기 때문에 —
낱낱의 실개울을 다루고, 더 나아가 물방울들을 다루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네, 나아갔습니다. 발전한 겁니다.
물론 이 발전은 균질하지도 않고 억지로 일률적으로 맞추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사와 각 민족사는 그 성취가 동일하지 않아서
어딘가는 큰 줄기를 정리할 더 큰 동기와 필요가 있기도 하니까요.
이를테면 한국사는 세계 역사학계의 저런 흐름을 그냥 따라가기에는
정리되지 않은 게 많습니다.
당장 동아시아 삼국 중 일본이야 중세—봉건제로 이야기되는 시대를 경유했지만
한국의 중세는 오히려 서양 근세에 가까운 중앙집권적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민족 개념의 형성도 유럽과 동아시아는 다릅니다.
인도는 또 인도대로 다르고, 사실 지중해 세계에서도 유태인의 존재는
민족에 대한 전혀 다른 개념을 장기간 장착해 왔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새로운 흐름은 역사의 과제 겸 광활한 영토를 열어 준 셈인데
아무리 큰 줄기 사건을 정리하고 역사적 평가를 할 과제가 있다손쳐도
그런 채로도 여전히 개별 사건들 중 집중할 만한 건들이 있곤 합니다.
그중 경제사나 민속사 분야가 따로 있고, 고유한 가치를 갖듯
어떤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는 것은
전기나 인물학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함께 역사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바둑의 경우.
중국과 일본에 비해 역사도 짧고 기량이 한참 밑이라 여겨졌던 한국 바둑은
한 명의 거인을 맞이하는데
그는 일본 명인의 내제자로 성장해서 한국 최강은 물론
때마침 열린 정식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합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승부> (너무 멋지니까 꼭 보세요!) 에서는
조훈현 국수가 프로 입문 전 어린 이창호 국수를 내제자로 들인 시기를
이 세계대회 우승 후로 살짝 각색했지만
실제로는 내제자로 들인 게 먼저이고 그후 얼마 안 있어서 세계 대회에서 우승배를 들어올립니다.
영화는 스승이 “바둑의 신과 둔다고 해도 질 것 같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을 비춰줍니다.
그리고 제자는 바둑의 신이 되어 스승의 불경스런 말을 심판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기풍은 확연하게 달라서 한쪽은 제비, 전투의 신 등으로 불리고
한쪽은 흔히 돌부처로 불립니다.
그들은 갈등했고, 싸웠고, 이해했습니다.
역사상 이렇게 멋진 정반합은
일부러 꾸며 내려 해도 만들지 못할 만큼 멋진 정반합.
둘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로 머물지 않고
스스로 배우며 서로에게 도전합니다.
그러면서 둘은 마주보고 나란히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역사는 종종 국가 운영이나 전쟁의 향방을 알려 주지만
더 중요한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발전하거나 망가지는 길도 보여준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은 승부의 결과로 위치를 바꾸다가 각자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얻습니다.
둘은 그리스신화식으로 표현하자면 둘 다 영웅적 업적 때문에
하늘에 들어올려져 신이 되고, 별자리가 되었습니다.
영화가 너무 잘 묘사해서 다시 더 떨어진 묘사와 설명을 늘어놓고 싶지가 않습니다.
영화는 보십시오.
다만 저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게 일종의 역사 법칙이라는 것.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만남도 있고 이별도 있지만, 이기고 지는 승부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이상적 결과
서로를 살려 저마다 스스로 서게 한다는 것.
그게 참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만을 언급하겠습니다.
역사에 나쁜 일은 없습니다.
좋거나 나쁘게 바라보는 입장이 있을 뿐.
그런데 좋은 승부는, 모두를 성장시킵니다.
두 기사는 지금도 은퇴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성기를 지나서도
그래서 자신의 승률이 조금씩 깍여 나가도 개의치 않고 계속 프로로 남아 있는 저들은
이미 승부의 세계를 넘어서서
업력(業力) 대신 원력(願力)으로 이 현실에 나투신 보살, 부처, 신들 같습니다.
그대도 역사로부터
함몰되지 않고 살아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런 건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거랍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