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를 6월에 기억하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환하게 웃는 여자주인공 다림의 얼굴입니다.
그걸 마치 사진처럼 멈춰 세우며 마치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시 확인해 보지 않아 오래된 기억이 윤색되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렇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여자주인공은 무얼 보고 그렇게 환하게 웃었던 걸까요?
초원사진관의 거리로 난 유리벽 안에 놓인 사진은
남자주인공의 얼굴, 정원의 영정사진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며칠 뒤 나는 잠시 그 영화를 들추어 보았습니다.
다림이 웃는 얼굴이 커다랗게 주목된 뒤
카메라는 돌아서는 다림을 비추고
다림이 떠나고 빈 무대, 초원사진관 앞을 익명의 행인들이 오가며 마쳐졌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움직이는 화면을 멈춘 화면으로 기억했고
빈 무대를 주인공의 얼굴로 꽉 찬 화면으로 기억한 것입니다.
더 커다란 건
정원의 영정사진, 장례식 때 그의 아버지가 바라보던 사진은
흑백으로 된 남성, 정원의 얼굴이었지만
다림이 바라본 진열장 안의 사진은
다름 아닌 여성, 다림의 얼굴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원의 사회적 죽음은 그의 겉모습대로 전시되고 추념되지만
진열장 위에 놓인 건 정원의 내면의 죽음, 그가 죽을 때까지 간직한
그가 그토록 감사해한 다림의 얼굴입니다.
다림은 그 응답과 간직함에 환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요?
영화를 보던 당시 큰 울림으로
다림의 얼굴로 정원의 죽음을 기념한 관객 중 하나였던 나는
그 감동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흐릿해져서는
다시 또렷한 ‘만들어진 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이한 것은 결국 우리 기억이 감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한 것, 이해하고 간직한, ‘읽기’한 것을 저장하고 재생해낸단 뜻일 겁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에서 한 주인공이 다른 한 주인공에게 한 번도 웃어 보이지 않았는데
기억 속에서는 무표정한 그가 여러 번이나 활짝 웃었다고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나는
영화 속 마지막 대사인
죽은 정원의 목소리가 들려 주는 나레이션을 정확하게 기억했습니다.
평소 기억하던 것은 아닌데
정원의 아버지가 사진관의 문을 닫고 나설 때
문득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떠올랐습니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우리는 본 것을 더 잘 기억하지만
들은 것을 더 깊게 기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는 것을 마주칠 때
그것을 말로, 소리내어 말로 해 보십시오.
혹은 사람에 따라 다른 감각으로 그러나 어쨌든
명징한 언어로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지만
그렇게 해야 명료해지는
많이 덜고 조금 남기는
그럼으로써 사라진 것들과 비운 것들과 이어지는
그 ‘말’을 써서 떠올려 보십시오.
문득 그 어렵고 알 수 없던 것들이
너울을 벗고 숨은 뜻을 드러내는 것을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이 제법 흔하게 일어난다는 걸 알면
그대는 자기 말이 아니라
상대방 혹은 사물을 상대로 일깨워[animate]
그에게 목소리를 빌려 주는 것임을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물들이 직접 말하고
그대는 그저 들은 것을 전달하고 있음을
그렇게 자기 자신을 매개[medium]로 삼아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그 무엇이, 세상이, ‘너’가
오롯하게 전달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런 날들이,
그런 순간들이 좀 더 빨리, 그리고 이후
자주 있기를 바랍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