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밥 먹었어?
밥 먹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의 눈을 보면 범인인지 아닌지 안다던 형사(송강호 분)가
겨우 잡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박해일 분)를 한참을 들여다보고도 알 수 없자 돌연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 밥은 먹고 다니냐.
이때, 밥은 꼭 벼를 거두어 정미해 만든 쌀로 지은 끼니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밖에도 무어든 끼니를 잇는 식사와 음식 전반을 아우릅니다.
이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압니다.
우리 학교는 입학하면 술, 담배를 배우지 않게 합니다.
이 말은 술이나 담배를 새로 시작하지 않게 한다는 뜻일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미 피우던 담배나 마시던 술은 새로 시작한 게 아니니까
계속 해도 되는 걸까요?
누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한다면 모두가 참으로 황당해할 노릇입니다.
시작도 하지 말라는 말은
하던 것도 그치라는 말입니다.
말뜻은 이렇게 번집니다.
당연하게 번지는 게 있고
특별한 목적으로 특별한 맥락 하에 특별한 방식으로 번지기도 합니다만
많은 경우에는 척 하면 척 하고 알아듣게 써야 합니다.
이런 걸 제유법(提喩法)이라고 하지요.
시를 쓴다는 건 별난 사고를 하는 게 아니라
유난히 밝은 눈을 갖는 것입니다.
타고난 눈이 밝지 않아도
오래도록 바라보고
진실하게 바라보면
치우치지 않고, 어떤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바라보면
고것이 보입니다.
톡 하고 건드리면
지레를 쓰듯
하나로 나머지를 모두 들어올리는.
아, 그런데 살다 보면
빤한 것을 모른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따로 속셈이 있어서죠.
그대는 마음을 나누지 마십시오.
다른 이와 내 마음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키우는 것이고,
한 마음이 더 큰 한마음이 되는 것이니 그것을 이르는 것이 아님은 알 것입니다.
분심(分心). 마음을 쪼개서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과 저 마음을, 딴 마음을 한 속에 담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결국 보이고
그대가 보는 것을 믿어도 될 것이며
가장 적은 말로도
가장 많은 마음과 뜻이 통할 것입니다.
시적(詩的)이죠?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