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물길

타올라 꽃 피다

by 이제월


1963년 오늘(6월 11일) 남베트남의 서울인 사이공(지금의 호치민 시)에서

한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어요.

주변에서 다른 스님들이 그에게 휘발유를 붓고

그는 조용히 성냥을 그어 스스로에게 불을 붙였습니다.

그는 불이 타오르는 동안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타들어갔습니다.

마침내 주검이 되었습니다.

마치 불길로 피어난 연꽃 같았지요.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였고,

정권의 요직은 6,7십 퍼센트 가량 가톨릭 신자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은 인구의 70 내지 90 퍼센트가 불교 신자였답니다.

하지만 정부는 불교를 억압하고 탄압하였습니다.

공공행사도, 군과 행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았고

불교를 나타내보이는 깃발을 거는 것조차 금지당했어요.


냉전 시대 공산권인 북베트남에 대한 대항마로서

당시 1세계 선진국들은 남베트남 정권을 지원하고 옹호했지만

이 사건으로 안 그래도 비판 여론이 일던 것이 폭발했답니다.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도 큰 충격을 받았다지요.

이 사건은 결국 국제 사회의 여론을 일으켰고

그해 11월 응엔디지엠 정권은 쿠데타로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분신(焚身)한 틱꽝득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엄청난 투사였을 것 같지만

그는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승려로 살아가며

깊은 수행과 여러 사찰을 세운 불사로 베트남의 불교 확산에 공헌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자비롭고 고요한 성품으로 종단의 고위직을 맡고 존경받던 그가

사회에 뛰어들게 된 것은

응엔디지엠 정권의 비민주적 통치가

국민 대다수인 불교도를 탄압하였고

그해 5월 8일에는 불교 탄압(결국 국민의 정신생활, 자유)에 항의하던 시위 도중

아홉 명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고서입니다.


틱꽝득 스님이 분신하는 모습은 사진에 담겨 전 세계로 퍼져 갔고

종교 자유를 외치는 상징적 행위로서

다큐멘터리, 음악 등으로 사회적 파급도 컸습니다.

의식적으로 고통을 감수하는 정치적 행위로서

각지의 비폭력 운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지요.


“나는 국가와 종교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우리 민족의 단결을 위해 기도하며,

대통령이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대하길 간청한다.”


단순한 자기 희생이 아니라

억압받는 다수 민중의 외침, 그러한 처지의 다수 종교인의 권리 회복,

국제 정치의 변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하여

비폭력 운동의 윤리적 상징까지

여러 겹으로 복합성을 가진 사건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범주, 다른 분야에서,

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움직이는 게 효과적이고 맞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이,

다시 말해, 다양한 세계가

한 사람 안에 접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불붙여 꽃잎이 벌어지듯 펼쳐졌고

온세상에 그 향기를 뿌렸습니다.


한 사람의 힘(power of one)은

작지 않습니다. 막연하게 크다, 귀중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힘의 크기는

그의 안에 접혀진 세계의 크기만큼이고

이 크기는 폭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깊이에 의해 결정됩니다.

깊이만큼 폭도 커집니다.

그리고 거기에 세계가 갊아들어가고,

접혀진 세계가 펼쳐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025년의 오늘도 그렇습니다.

아마 2088년의 오늘에도 그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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