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돌려주기와 되돌리기 (1) 태워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 존재는 시간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왔던 길을 돌이켜 갈 수 있고
한 번 간 곳에 다시 가거나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할 수 있을지라도
시간은 돌이키지 못합니다.
다만 이를 거역하는 것이 있으니
그대여, 그것이 생각입니다.
생각만은
우리가 공간의 숱한 지점을 한껏 오가듯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갑니다.
한 곳에 머물기도 하고
몇 번이고 들여다보기도 하며
생각 속에서는
넘어진 컵을 쓰러지기 전에서부터 다르게
연장해 이야기를 이어 가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한 번에 들어다 ‘지금-여기’에 두고서
‘지금-여기’라는 시공간에서 변용합니다.
호흡이 일체화(一體化)하는 동화(同化) 활동이고
소화가 이화(異化)한-것을 삼켜 부분 흡수하고 변용하는 활동으로서
반일반이(半同半離)이라면
생각은 적극적으로 이화하는 활동입니다. 나누고, 가르며, 떼고 떨어뜨립니다.
생각은 아닌 것을 아니라 하는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일은 때로 자신과
때로 타인과 다투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가벼운 부딪침일 때도 있지만 긴긴 씨름이 되기도 하고
증명하는 여정이 되기도 하며
뉘우치는 길로도 이어지고
마음을 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펼치는 데에도 이릅니다.
아무튼 그것은 ‘다름’ 앞에 정직하고, 정직하여 괴로워하면서도 ‘아니’라고 말하는 일입니다.
너는 내가 아니다,라거나 이것은 저것이 아니다,라고 하는가 하면
너와 나는 남이 아니다,라거나 우리는 하나인가 하고 물은 채
물음 안에 잠겨 또는 물음을 품고서
일평생 살아가게도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거니와
그러나 참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을 역겨워하고 노여워하는 탓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면
되살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모두 들이받고 부수면
내 대답을 들을 이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청룡의 길을 소개하려 합니다.
딱히 학문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공작왕>이라는 만화 작품에서
등장한 청룡이 힘을 쓰는 방식에서 이름을 빌렸습니다.
굳이 학문의 영역에서 말을 찾는다면
레토르지온(Retorsion)이 가까울 터이나 엄격하게 이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이끌고자 하기 때문에
그저 청룡의 길, 청룡의 방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벌써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군요.
다음 이 시간에 이 자리로 돌아와 이야기를 잇겠습니다.
(흠, 청룡의 방식. 이름이 그럴싸하지 않나요?)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