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대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기 위해서(요한복음 9장 3절)

by 이제월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물었다.

“랍비, 누가 죄를 지어서 저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9장 1-3절.*



병과 고통을 괴로워하고 싫어해서

심지어 그게 무슨 잘못 때문이요,

결과이며 증거라고 생각하는 못된 버릇은

다만 현대인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괴로움을 싫어하고, 나쁜 것으로 여기며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

괴로움에 약한 이를

멸시하거나 두려워하여 멀리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능으로 주어진 생태적 지능은

악을 멀리하듯 죽음을 멀리하고

안 좋은 일로부터 달아나라 이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지능으로

약자를 돌보고 그들이 가진 다른 가능성을 펼칠 기회를 마련합니다.

은혜를 갚고, 은혜를 베풉니다.


자연에서 병든 자, 약한 자, 늙은이와 어린이를 돌보는 것은

인간과 고래류뿐이라고 합니다. (코끼리에게도 다른 동물에게서도 조금씩 보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고래에게서처럼 일반화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개체에게 큰 부담을 주지만

그렇게 비로소 ‘사회’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차례 더 베일을 벗고

솟구치는 관점이

이 복음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 불린 예수는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단지 인내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래서 얼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걸 목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의 눈에는 그것이

더 놀라운 일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의 결과이고, 그걸 처리하면

해소되거나, 다른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시작한 일을 올바로 이어가면

다다를 곳의 창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일 겁니다.


드러날 일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만족하여 멈추고

서로 칭찬하기 바쁘고

서로 몫을 차지하기 바쁜 일 말고

우리들 사이에 우리들을 넘어서는 것, 우리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자각

이 감각을 현실로 바꾸어

유독 눈밝은 이 말고도 참 어두운 이라도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며

알아볼 수 있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어쩌면

삶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우리 안에 있는(임마누엘, Immanuel),

우리를 초월하는, 안에 있으며 밖에 있는 것,

결코 이 안에 있을 수 없는데, 분명히 이 안에 있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것을 이르는 이름이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대에게 하느님이 무엇이든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이렇다든 저렇다든

좋다든 싫다든

넘어섰으나 안에서 감지하는 것, 우리가 마주치는 것, 그 투명한 그림자

하느님의 일이라 일컬어집니다.


예수는 저 비참함만이

그리고 우리의 몰이해가

복된 탓이란 걸 압니다.

거기서밖에 우리는 이 크기를, 넘어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개천에서도 용이 나더라는 말이 아니고

오직 개천에서만 드물게라도 용이 난다, 개천 밖에서는 꿈꿀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대는 무엇으로 괴롭습니까.

혹시 그대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혐오하고 깔보지 않습니까.

그것들을 멀리 치우고, 지워 버리고 싶지 않습니까.

정말 다 치워 버리면

세상은 하느님이 없습니다.

만나지 않는 하느님은, 만날 때까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만나면

이미 넘치게 받았고, 그때 다시 넘치게 받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죠.

그대가 넘치게 받은 좋은 것은

다 남 주면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인 자는

눈을 떠 자신의 삶을 새로 시작하고

다른 이들도 그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맹인에게만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시작을 떠올리는 고마운 특이점이 될 것입니다.


+ 천주교와 개신교가 교회일치운동의 일환으로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는

약간의 설명을 부가해서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옮겼습니다.



*성경 번역은 분도출판사가 간행한 『200주년 신약성서』를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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