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나무야

잘 자고 잘 먹고

by 이제월

잘 자고 잘 먹어요.

자라는 데 이보다 큰 양분은 없습니다.

몸을 잘 재우고 잘 먹이고

정신을 잘 재우고 잘 먹이세요.


몸을 잘 재우는 건 일정한 리듬을 주는 일이고

정신을 잘 재우는 건 가짜 결론으로 치닫지 말고

아는 만큼 한 걸음씩 나아갈 뿐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간직하고 묵히는 것입니다.

속 썩지 말고 속에 삭이는 겁니다.

배추는 그냥 두면 썩고 모든 산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삭히면 김치가 되어 깊은 풍미를 더합니다.

김치는 주식이고, 부식이고, 간식이고, 후식이기도 하죠.

이걸 다하는 건 잘 삭아서입니다.

소리 하는 이들은 이런 걸 ‘시킴’이라고 하더군요.

소리에 시킴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다하되, 한번에 다하지 않고

다하도록, 쉬엄쉬엄 가기도 하는 것은

거짓에 빠지지 않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복잡하게 들린다면

서둘지 말자, 쉬어 가자 새겨도 좋습니다.


몸을 잘 먹이는 건

골고루 하나만 기억해도 됩니다.

더하면 감사히 먹는다.

하나 더 보탠다면

정성껏 — 꼭꼭 씹어서, 찬찬히 목넘김을 느끼며 정도?


몸을 잘 먹이는 데 대해서는 너무도 많은 정보가 넘치니

성의를 발휘하면 언제든 구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잘 먹이는 건 좀 더 복잡합니다.

감각 대상이 아닌 탓에

여러 개인과 집단이 이익을 좇아

거짓 선전을 참 많이 해서입니다.


정신 또한 골고루, 감사히, 정성껏이 기준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골고루?

그저 뭐든 다 잘한다?

아닙니다. 그건 결과물로서의 지식이며

만드는 지식,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과정도 아닙니다.

죽어 있는 것들, 시체로서 전시된 지식을, 경험을, 정보를

되살려 내세요.

멈춘 것들을 움직이게, 살아나게 해요.

그것들에 목소리를 주세요.


목소리를 줄 수 있으면 사실 다 된 겁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

초심을 잃지 않고

시작한 뒤 다시 시작하면

거진 다 된 겁니다.


목소리를 주어 대화하세요.

다시 말해, 생각하세요.

정신이 생각하며 무엇이든 먹게 해요.

입맛만 좇지 말고, 그런 편향은 쫓아내도록 해요.

그것들이 무어라 하는지 진심으로 알아들으려 힘쓰세요.

그러면 정신이 그것들을 잘 먹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라도

그것이 정말로 복잡한 것이라면 더 쉽게 말하는 건

맥락을 제거하고 진실을 감추는 것이기에

어려운 대로 말하여질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합니다.

그럼 그걸 어떻게 수용할까.

꼭꼭 씹는 겁니다. 여러 번 꼭꼭 씹어요.

여러 번.

그것만으로 어지간한 건 다 이해 가능하단 걸 경험할 겁니다.

그리고 넘길 때, 삼킬 때

그 감촉을 느끼세요.

정신의 감촉을 느껴 한 번 더 거르십시오.

이것들에 인내를 발휘할 수 있도록

감사한 마음을

한 번 더 청합니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잔다면

배움과 자람은

저절로 따라올 겁니다.


저 알아서 컸다 소리 들을 겁니다.

하지만


그대는 알 것입니다.

모두가 그대를 품고 키운 줄을.


잘 배운 자만이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넓게 팔 뻗은 나무만이

바람이 부는 걸

느낍니다.





나무에게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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