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청룡. 돌려주기와 되돌리기 (2) 돌려준다는 것

by 이제월

지적인 싸움이든 물리적인 싸움이든

누군가와 겨룬다는 것은

무엇이 더 나은가 겨루어 본다는 일은

‘상대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죠?

싸우는 상대를 믿으라니.


그가 내 편이라고 생각하란 건 아니예요.

그가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란 거예요.

내가 아는 건 그도 알 거라고 가정하고,

내가 모르는 걸 그가 안다고 가정하는 거예요.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러니까 알 수는 없지만

알지 못하는 걸 판단하지 말고

믿어 보란 거예요.

너는 괜찮은 녀석일 거야, 당신은 다 알겠지.

그리고 묻는 거예요.

어,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해?


그럼, 이제 할 일은 분명합니다.

물어 보세요.


그의 말로 그에게 물으세요.

내 말로 물으면

그는 내 말뜻을 정확히 몰라 헤매고 부정확하게 답할 거고,

그럼 나는 오만하게도, 즉 멍청하게도, 아하, 너는 그거밖에 안 되는구나, 넌 뭘 모르는구나

하고 오판하게 되거든요.

그의 말을 잘 듣고,

그가 말을 안 하면, 자꾸 먼저 말하라고 해서

충분히 듣다가

그의 말을 써서 이것도 묻고 저것도 물으세요.


그의 말을 그에게 돌려주세요.

그러면 그의 말이 스스로 걸러져요.

이건 엄청 새로운 건 아니예요.


마침내 철학이 시작됐구나! 하고 외친 그 시점, 소크라테스의 등장 때,

소크라테스 방식이 그때 그런 거였거든요.

다만, 우리는 좀 더 친절하게랄까요, 좀 더 조심스럽게랄까요,

말마디를, 어구를 돌려주는 것이 함께 필요합니다.

적어도 그의 말을 간추리고, 그의 표현과 그가 도입한 구조를

그가 펴는 전체와 부분부분에 대입하도록 하여

의혹을 없애는 절차를 밟읍시다.


놀랍게도, 이 과정의 끝에

그대는 상대를 이해하고,

납득하거나

상대가 실수나 결여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대화가 끊기고 서로 떨어져 생각해야 하는

소강 상태, 냉각기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부당한 짓은 조금도 하지 않게 됩니다.

상대가 곤란을 겪는다면 오직

상대 자신이 판 함정, 상대 자신의 가혹함이나 엉성함 때문일 겁니다.


이는 다음번 대화를 가능케 하고

그 아닌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가능케 합니다.

그대와 이야기하는 게

위험한 일이 아니고,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막힌 데를 뚫고 자신이 더 나아갈 기회를 주기까지 할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대가 얻는 유익이 큽니다.

그대는 비로소 하나의 회로(回路), 하나의 로고스(λόγος, logos)를 만나고 알게 되니까요.

병든 것이든, 건강하거나 뛰어난 것이든.

그대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길을 하나 더 익히게 됩니다.


돌려주면

많이 받습니다.


상대를 믿으세요.

상대하는 수고와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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