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대지

예는 거기서 생긴다(禮所生也)

by 이제월

仁者 人也 親親 爲大 義者 宜也 尊賢 爲大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

인자 인야 친친 위대 의자 의야 존현 위대 친친지쇄 존현지등 예소생야


中庸 第二十章 中에서

— 중용 제이십장 중



“인이란 사람다움이니, 친한 이를 친하게 대하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의란 마땅함이니,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친한 이를 친하게 대하는 것이 가깝고 먼 관계에 따라 감쇄되고,

어진 사람을 높이는 것이 존귀하고 비천한 것에 따라 차등이 있음으로부터

예가 생겨납니다.”

(황종원 역)



예의란 질서입니다.

그것은 매우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것입니다.

많은 것을 생략하여

굳이 따지지 않고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하며

서로의 약속을 믿고

따로 또 같이 일할 수 있게 하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예의는 아무렇게나 작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고

어느 한쪽의 이익에만 복무하도록 책략을 써 이룬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과 직관이 받아들이고 이끌리는 것을

지혜롭게 거르고 갈무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사회상이 달라지면 그 생김생김도 움직임도 씀도 조금씩 달라져야 하겠고,

때로는 근본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렇습니다. 인과 의라는 것은

개인의 윤리와 집단의 윤리의 핵심이거니와

하나는 개인이 선택하는 기준이고

하나는 집단이 결정하는 원리입니다.

인은 그런데 사람다움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인은 사람이 사람다운 것을 말합니다.

결코 억지스러운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간디가 성인이 되기를 바랐다면 오웰은 인간이 되기를 바랐는데

공자는 성인의 길이 인간의 길과 같다고 믿은 사람입니다.

생전 김수환 추기경도 신학생들에게 마지막 강의를 할 때에

사제의 길이 그리스도의 길이라면, 그리스도의 길은 인간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점은 중용의 이 구절과 함께 제 뇌리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어쩌면 인간을 싫어하고 인간이 아니려고 힘썼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되어 보자 다짐하였지요.


인간은 친함이 있습니다. 가깝고 멂이 있다는 겁니다.

모든 이를 사랑할지언정 제 자식 굶기지 않고서 남의 자식도 챙긴다는 식이지요.

결코 호사스럽게 사치를 누리는 걸 뜻하거나

탐욕을 부려 남의 몫마저 빼앗는 걸 뜻하지는 않지만 사정을 살필 때

제 자리에서부터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 목숨을 버리며 동물을 살리는 건 어리석은 겁니다.

그렇다고 동물의 목숨을 소홀히 하는 것도 인정에 어긋납니다.

개인적 가까움도 있을 것이고, 우리는 미리 궁리하고 대비하여

아예 그런 선택의 상황이 오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도록 꾸준히 풍요를 늘리고 자유를 확장한 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다만 그때는 세상의 자원이 무한한 줄로 착각하여 함부로 하였다가

인간 사이뿐 아니라 모든 일에 윤리가 미친다는 것을

즉, 예는 모든 것에 미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 오늘입니다.


지구를 해치는 일은 우리 자신을 해친 일이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은 나를 해치는 일입니다.

의라는 것이 마땅함이라 하였거니와

어진 이를 높인다는 건 현현역색(賢賢易色) 즉, 하고 싶은 걸 하기보다

마땅히 해야 하는 걸 한다는 말입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걸 마땅한 길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친함이 점점 감쇄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지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되,

이 세계를 구상하고 경영하는 데서 올바름을 앞세우고 이로움을 뒤따르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며,

이를 그르치지 않아야 모두에게 질서가, 질서가 약속하는 평안이 찾아옵니다.


성인이 된다든가, 도덕 군자가 된다는 것이 마냥 어려운 일도 아니고

뭐 그렇게 지루하고 심심한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기 위해 솔직함과 정직함을 겸비하는 것,

어리석지 않고 삶에서 ‘우선순위’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것이 예의바른 것, 예도입니다.


그대는 예에 어긋나지 않게

솔직하고 정직하십시오.

그렇다면 그대는 친밀함과 존귀함을 모두 얻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사람인 한에서야

이보다 더한 것이 있으며, 달리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목적도 없고 기준도 없는 게 아니라

목적도 있고 기준도 있습니다.

방향이 주어집니다.

그럼 손에 쥐고

자유롭게 운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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