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작품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네 삶이 전쟁과 평화의 연속이라는 말을 꺼내는 겁니다.
가끔 전쟁을 선악이나 정의와 연결짓는 것을
아니면 욕심이나 이해관계로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들을 일면 맞지만 꼭 다 맞는 건 아닙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들을 살펴봐도 그렇고
역사 속 전쟁들을 공부해도 그렇고
전쟁 속 전투들에는 좀더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것들이 개입하지만
전쟁 자체는 괴물들의 행동도 아니고
악마의 선택도 아니며
그렇다고 영웅의 행위는 더더욱 아닙니다.
전쟁은, 인간의 일입니다.
전쟁이 인간의 일이란 건
전쟁을 시작하고 이끌다 멈추기까지의 전 과정이
인간적 이유와 인간적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도식이 아닙니다.
더 빤한 도식을 말하려고 합니다.
전쟁은 인간이 문제설정하고, 인간이 문제해결하는 일,
성공하든 실패하든 유예에 불과하든 바로 그 일입니다.
인간이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라고 인식하거나 규정하고
실제로는 악화시키든 정말 갈등 해소하고 목표를 이루건 말건
아무튼 해결하려 하고 해결하여야 하는 일이 전쟁입니다.
그러나 대체 누가 전쟁을 바란단 말입니까?
누군들 희생과 위험을 감내합니까?
물론 아니겠지요.
단기전으로 끝날 거라는 착각, 이긴다는 착각, 이쪽이 더 우월하다는 착각,
남들도 다 우리랑 같은 입장이거나 이해할 거라는 착각,
전쟁 후 전보다 좋아질 거라는 착각,
전쟁하지 않으면 더 나쁠 거라는 착각, ……
무수한 착각들이 모여서 전쟁을 결정합니다.
왜 이런 착각을 하고
또는 왜 원치 않으면서도 다른 방법을 못 찾고 전쟁에 이르는 걸까요?
복잡성 때문입니다.
전쟁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전쟁은 복잡성의 증가가 폭발한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해하기 힘든 경우들도 있습니다만
그건 그 결정자 입장에서는 소화할 수 있는 복잡성을 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언제 끝나는가,
언제 종전 또는 휴전에 이르는가.
그건 복잡성이 해소될 때라고 말해야겠군요.
물론 다른 복잡성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이 증가는
전쟁 발발과 유지의 복잡성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그 복잡성이 더는 증식하지 못하고 감소할 때
그때에 전쟁은 끝이 납니다.
평화는
그 사이 잠시일 수도,
어쩌면 좀 긴 사이일 수도 있습니다.
평화를 더 적극적으로 정의하는 게 저의 지향이고
아마도 20세기 양차 대전을 겪은 후 평화학의 입장인 줄로 압니다만
전쟁이 있는 한
전쟁 가능성이 있는 한
평화는 언제나 전쟁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잘 모릅니다.
평화는 전쟁보다도 복잡합니다. 평화가 주는 감상도 그렇습니다.
다만,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비로소
이 마당 위에 선 자들이 자기 선택을 할 여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이 마당에 선 모두를 휩쓸고 선택을 가로막습니다.
저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유와 존엄이 결국 평화의 본질이다.
그러면 두 갈래 길이 보입니다.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다면 그건 평화 —그 찬란하고 ‘하나’가 아니라
둘로 쪼개어 짝을 이루는 ‘억압-굴종’이므로, ‘선전-착각’이므로
그때는 이 비평화 상태를 끝내는 전쟁조차 평화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평화가 주어져도
전쟁 이상의 복잡성을 지니는 평화 —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 선택을 하고 자기 선택을 계속 갱신하니까 — 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는 수고를 마다는 이들에게는
평화가 그야말로 심심하고, 답답하고, 전쟁을 분출구로, 해결법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또 한 길입니다.
자유롭습니까?
자기 존엄을, 상호 간 공동의 존엄을 수행하고 계십니까?
여기에 달렸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언제나 우리는 전쟁을 직면합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집단 차원에서도.
인류사는 복잡성에서 회피한 전쟁의 역사와
복잡성을 감당하는 평화의 역사 두 줄로 꼬아낸 실과 같습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