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먼저, ‘다시’에 대해

by 이제월

생각이 실행이라는 데 대해 말하려고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이미 생각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잠시 순서를 바꾸어야겠습니다. 특별권을 들고 입장한 손님이 있어서

이 생각손님을 줄의 맨앞에 우선 입장시켜야겠습니다.

오늘 먼저, ‘다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다시’는 생각에서, 사고하는 길에서 어떤 뜻인가.

산불조심 표어마냥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불조심’ 같다면 될까요?


밑도 끝도 없이

아무런 실마리 없이

언제라도 떠올리고

살펴봐도 좋은 것.

그런 게 불조심이지요.


예컨대 진로 상담을 하며 ‘압박’을 했습니다.

늘 그런 건 아니고 반복된 상담에서 회피하는 친구와 밀고 당기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그렇더라도 저건 제가 손쉽게 선택하는, 저한테 익숙한 방식이었습니다.

제 스타일이래도 좋지만 중요한 건 제 스타일이란 겁니다.


상담실과 교실 들이 포화상태여서 노출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보니

유심히 보신 다른 선생님이 이에 대한 다른 의견을 조언해 주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여러 차례 면담 중 하나였음을,

잘 풀지 못하고 되려 튕겨나갈까 하는 염려를 주신 데 대해 밀당하고 달래었다고 답했습니다. 마치 안심시킨다는 듯이.

아침 대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만, 저는 무얼 끝내지 않습니다.

보통 말하는 식으로는 끝내고, 끝내고, 끝내는 걸 유념하고 주력하지만

제 영혼은 내가 무엇을 다 안다고도, 다 했다고도 수긍하는 법이 없고 수락하는 법이 없습니다.

무한한 직선의 일부로 바라볼 뿐, 어떤 선도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부득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처리하노라 할 뿐, 그것이 진짜 시작과 끝이라고, 일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익힌 사고법이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낮의 일을 다시 생각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어리석었고, 상대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저건 내 스타일입니다.

우리 스타일이 아니고.

우리는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하며

서로 동의한 바를 공동 실천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그걸 추구한다는 것인데

너무 멀리 있습니다.


우리는 늘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하는데

그래서 멀리 바라보는데

지금 안 들어도 지금 안 바뀌어도 나중 나중에라도 변화하기를

그 좋은 싹을 심는 것인데

이건 안다고 치는 아는 사이에게는 분명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보면, 어떤 주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객관에 의해서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학교란 데가 어떤 학교라고 할 거면

목표를 말하는 게 아니라 방식을 말해주어야 하지 않나,

스타일을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들은 조언은

나의 선의에 대한 물음이 아니고

나의 행동방식 자체에 대한 물음입니다.

내가 한 일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임했고,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가가 아닙니다.

그건 상대를 포함하고 전후 맥락을 갖고 그것들에 의지해 변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용’이라고 여긴 것은 실제로는 ‘외부’의 것들이고

내가 하는 행위에서 거의 아무것도, 있대도 ‘아주 조금’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한 행위는 내 스타일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선의와 별개로 사실 내가 한 일은 나 생긴 대로 내 스타일을 드러낸 것뿐입니다.

이게 벌거숭이 임금님의 퍼레이드와 뭐가 다를까요?


드러나야 하는 건 자기 정당성의 주장, 선의의 비침이 아닙니다.

그건 주장한대도 상대의 동의 없이 전할 수 없는 것, 그런 만큼 나약한 것입니다.

정말 드러내야 하고, 드러나고, 드러내는 것은

— 이 셋은 같고도 다릅니다만 이 자리에서 더 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

스타일입니다.


그럼, 학교는 어떤 학교냐 하면 학교의 스타일이 드러나야 하고

그렇다면 각자의 장기 자랑이 아니라

‘각자’를 뛰어넘은 ‘이 집단’의 ‘것’이, 그 스타일이 줄기차게 드러나야겠구나.

그게 바로 이 학교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반대하고, 답하였다고

내가 잘하였고, 알아 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결론과 이어지는 것은

본래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끝난 일을 끝내지 않았고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다시> 생각하기를 <다시>하고 <다시>하고 <계속>하니

작은 차이를

다르게 바라보는 순간도 이렇게 옵니다.


저는 또 다르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였고

발전하고 확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늘 주고받는 말을 더 귀하게 듣고, 할 일을 찾을 것도 같습니다.


삶에서 변하지 않는 걸 찾고 싶다면

변하는 것들을 열심히 좇고, 안고, 품어야 합니다.

피할 것 없이, 무시하지 않고


‘겁’도 없이, ‘비겁’도 없이

생각하는 법은

한 번에 배울 수 없습니다.

언제고 ‘다시’ 생각하여야 합니다.

다시 생각하는 게 쓸데없어 보이고 때마다 변할 뿐

같은 일은 다시 생각해도 같더라 싶어도

그건 도리어 아직 내가 ‘다르게’ 생각하지 못하였기에

‘다시’ 생각할 이유가 더 크고 절박해진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다시 생각하는 것 말고는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대가 감당할 수 있다면,

감당할 수 있는 그만큼은

다시, 다시 또

다시 생각하세요.


어느 대단한 거인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울 것입니다.


내용이 아니라

이[런] 스타일이

그대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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