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생각은 ‘실행’이다 — ‘치료’다 (1) 필로소피아

by 이제월


사고는 ‘실행’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기로 하였죠.

오늘날 우리가 철학(哲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 일본 학자들이 philosophy의 번역어로 선택한 말입니다.

그리고 필로소피는 그리스어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가 영어가 되면서 어미가 변형된 것입니다.

필로소피아는 흔히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알려져 있지요.

소피아(σοφία)는 지혜를 가리키고, 필로스(φίλος)가 재미난 말입니다.

‘사랑’이라고 알고 있겠지만, 그리고 그게 맞지만

그리스 말에서 사랑은 한 단어가 있지 않습니다.

가장 흔히 접하는 건 에로스(ἔρως). 신화 속 신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판본에 따라 최고신이기도 하고, 아프로디테의 아이기도 하며, 어떤 버전에서는

태고의 최초의 신이자 최고신이 유희를 즐기러 올림포스 신들 사이에 섞인 것으로도 전합니다.

아무튼 에로스는 강렬한 끌림, 충동, 성애(性愛)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아가페(ἀγάπη)는 자비로움, 아낌없이 베풀어줌, 기르고 지켜줌,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해관계나 다른 상호교환 없이 베푸는 이웃사랑을 가리킵니다.

에로스와 아가페면 다 된 것 같고, 두 사랑은 매우 상반된다고 여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두 사랑은 매우 닮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랑이 들어설 자리가 남습니다.

두 사랑은 불평등합니다.

에로스는, 흔히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서로가 상대를 똑같은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지요. 그 바라는 정도는 완전하지 않고, 둘이 균일하지 않다는 것은 결국 둘이지, 하나가 되지는 못한다는 걸 뜻합니다. 그래서 유난히 갈증이 일어나는 게 에로스.

아가페는 한쪽이 압도합니다. 너무 커서 위계가 다른 이 사랑의 관계에서 양자 중 큰 쪽의 사랑이 작은 쪽의 차이, 다시 말해 고유성을 삼켜 버립니다.

에로스는 상대의 특수한 매력을 가늠케 해 줄 수 있지만, 아가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의 거대함이 상대편을 전혀 변수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지요.

두 관계의 사랑은 하나는 지나치게 변덕스럽고, 하나는 지나치게 균질합니다.

그러나 필로스는 다릅니다.

필로스는 평등한 사이의 사랑입니다.

적어도 평등해지려고 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관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동시에 ‘친구’입니다.

필로스는 ‘친구’를 말합니다.

미국 도시 필라델피아는 ‘사랑의 도시’이지만, 애초 더 근본적으로 ‘형제애의 도시’ ‘우정의 도시’인 겁니다.

그래서 필로소피아를 단순히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만 말하면

헌신하거나, 열망에 가득 찬 것만 떠올릴 수 있지만

필로스의 뜻을 새겨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필로소피아는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은

삼키는 것도, 탐닉하는 것도, 삼켜지는 것도 아닙니다.

불완전한 탐구자가 완전한 지혜를 대하여 품고 행할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사라지는 것도, 나 때문에 상대가 상대화되고, 오염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무릇

지혜와 친구되기를 원하는 것.

그 순수한 지혜와 대등해지는 것, 지혜의 벗이 되려는 것입니다.

둘이 서로를 살지우고 교류(交流)하고 교유(交遊)하자는 것입니다.

상대를 존중하지만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높은 만큼 자신도 높아지려는 것입니다.

한쪽이 한쪽을 삼키거나 다 품는 방식이 아닙니다.

필로스는 사랑하는 쪽도 사랑받는 쪽도 모두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한쪽이 고결하거나 커다랗다고 형성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부단하게 배우고 자랍니다.

그래서 믿고, 믿기 위해 의심합니다. 알기 위해 모르고, 무지로 뛰어듭니다. 아는 만큼 믿지만 더 알기 위해 믿음이 더 커져 알지 못하는 데로 나아가고, 믿는 만큼 진정으로 알게 됩니다. 번갈아 둘이 나아갑니다.

철학자의 지혜는 지혜를, 진리의 세계를 더 풍성하게 만듭니다.

요소가 증가하지 않는대도 요소의 연합이 천변만화하여 만개합니다.

지극한 화엄(華嚴)의 세계인 것입니다.


올바른 사고가 행하는 첫 번째 치료는

대등해지는 것입니다.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들뢰즈가 “철학이란 친구들과 하는 것”이라고 말한 건 참입니다.

(원문: “La philosophie, c’est faire de la philosophie avec des amis.”)*



자, 그대가 온전하게, 올바른 사고를 하자면

틀리지 않게 생각하고자 한다면

친구-되기를 배워야 합니다.

나날이 더욱 훌륭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친구되기에 능숙해서 ‘친구-함’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타인을 나와 대등하게 만들 줄 알 때, 거짓으로가 아니라 참으로 그렇게 할 때

그럴 줄을 아는 만큼만 올바른 사고과정을 갖고, 올바른 사고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만하는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대가 오만하다 해도

뭐, 좋습니다. 나 말고 상대도 그러하다고 여긴다면야.


타자를 존중하십시오.

시늉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정을 다해

타자에 대한 관심을,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익히고 단련하십시오.


그럼으로써

올바른 사고를,

언제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이 신묘한 변신술을 체득할 것입니다.


이것이, 철학, 올바르게 사고하는 방법입니다.

기본 장(場, field)을 형성하는 요령입니다.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가 공저한 『철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philosophie?)(1991)에 나오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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