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원하지 않는 데로 데려갈 것입니다(요한복음 21장 18절)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그대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띠고 원하는 데로 걸어다녔습니다. 그러나 늙으면 두 손을 내밀 것이요, 다른 이가 허리띠를 매어 주고는 그대가 원하지 않는 데로 데려갈 것입니다.”
― 요한복음 21장 18절
앞뒤 구절을 함께 볼까요?
예수께서 세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 나를 사랑합니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합니까?”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 베드로가 말씀드렸다. “주님, 모든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먹여 기르시오.”
— 요한복음 21장 17절
너를 믿어도 되는지 확인하고는, 이 자격 문답에 이어서 임무를 부여한 것입니다. <할 일>을 하라고 일러 줍니다. 그런 다음에는 <한계>를 함께 알려 줍니다.
신뢰 확인 — 자격 문답 — 임무 부여 — 한계 설정[고지] 후는 어떨까요?
이렇게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를 암시하셨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시오” 하고 이르셨다.
— 요한복음 21장 19절
다행히도(?) 한계는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한계가 무려 <죽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이 경로와 결과가 <영광>이라고 의미를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정말로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만일 어떤 코치나 감독이 선수를 훈련시키고, 경기를 지도해 ‘패배’하고 ‘탈락’한다면 그것이 그 지도자에게 ‘영광’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는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로 사도의 서간 중 고린토1서의 다음 구절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º 하느님은 오히려 지혜로운 것을 부끄럽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고,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으며,
º 잘난 체하는 것을 무력하게 하려고 세상에서 미천한 것, 멸시받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을 택하셨습니다.
º 그리하여 어떤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 고린토1서 1장 27-29절
위의 연속한 세 절 중 특히 1장 27절의 희랍어 원문은 이렇게 직역할 수 있습니다.
ὅτι τὸ μωρὸν τοῦ θεοῦ σοφώτερον τῶν ἀνθρώπων ἐστίν, καὶ τὸ ἀσθενὲς τοῦ θεοῦ ἰσχυρότερον τῶν ἀνθρώπων.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더 강하다.
이는 진복팔단**에 대해 윤동주 시인이 새로 쓴 시와도 궤를 같이합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시인은 자신이 쓴 시 전부를 따옴표 안에 가두어서
시인의 상상력이나 희망, 혹은 영감에서 온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의 거룩한 말씀으로서,
신언(神言)으로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점 일획도 고치지 않았다. 이것은 진실하다. 원본 그대로다, 하고 강조하는 겁니다.
윤동주 시인은 진복의 조건과 양태 여덟 가지를 오직 한 가지로 통일하였고
그 결과도 오직 한 가지로 통일하였습니다.
슬퍼하는 자가 영원히 슬플 것이라고.
그것이 참 행복의 조건이라면
그것이 참 행복의 전부라는 게 이상할 게 없겠지요.
살면서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게 무얼까 생각하여 볼 때가 있습니다.
사노라면 그런 순간이 문득문득 찾아오고
때때로 부지런히 일삼아 그런 고민을 합니다.
그러면
평소 싫어하고 없애고 싶어하던 것이
없앨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것이 ‘눈물’이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맨마지막까지 맨 나중까지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 눈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인간이라고 부르든 무어라고 부르든
한 존재의 존엄의 증거요, 존재를 유지하고 살아내는 목적이며 이유, 가치가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슬퍼하는 자는 복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슬퍼할 것입니다.
그는 모든 일에 끝내 감응(感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한 자는 복됩니다.
그는 끝까지 약할 것입니다.
너무도 약해서 제 뜻대로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닐 것입니다.
그는 점점 더 약해져서 이리 될 줄을 미리 알고도 그리 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는 훗날 갖게 될 약함을 미리 갖고[先取] 이렇게 선취한 약함으로 인해
보호받을 것입니다.
그의 작은 힘과 작은 함이 하나하나 거짓없이 그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겠기에.
간디가 자신의 삶을 ‘진리 실험’ 혹은 ‘진실 수행’으로 일컬었거니와
우리들의 삶은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이요,
눈 밝은 자가 보기에는 더 깊은 진리를 폭로하는 여정입니다.
원하는 것을 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보다는 그저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한에서 원하는 데로 하십시오.
그러면 다른 이들이 그대를 이리로 저리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어디에서든 그대는 사랑할 것입니다.
그대를 비웃는 지혜로운 자들이
실은 당신의 어리석음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알 때,
그들도 그대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진작 준 것을 풀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푼다뿐이지만요.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깁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도덕경 제8장 중 일구).
하선을 찾지 말고 상선을 쥐고 따르십시오.
꼭 잡고 따르다보면 혹시 또 압니까?
그대도 붙들려 매어져 놓칠 걱정 않고 살게 될지?
休
*인용한 성경구절은 모두 200주년신약성서를 대본으로 삼았습니다.
**진복팔단은 예수의 산상 설교를 전하는 공관복음 중 마태오복음 5장 3-12절, 루가복음 6장 20-23절의 행복 선언을 가리키는데 특히, 마태오 복음사가가 8개의 진복을 선언하여 ‘진복 팔단’이라는 이름이 붙어 널리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