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기둥. 꿈(2) 깨어 있으며.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깸과 일을 짝궁으로, 잠과 꿈을 짝궁으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면서 꾸는 꿈이 자기 자신을 형성한다고 이야기하였지요? 그런데 꿈을 이해하는 데 깸에 대한 이해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깨어 있다는 게 무엇인가. 깸은 어떤 상태인가.
깨어 있다는 건 단순히 감관이 외부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awareness’는 알아채고 있는 걸 가리킵니다. 이건 연결과 연결하기와 ‘연결되어 있음’이 서로 다른 것처럼 ‘알아챔’과도 다릅니다. 알아채는 상태,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즉,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통로인 감각기관이 열려 있어 작동할 뿐 아니라 그것이 의식 바깥에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온전하게 의식 아래 있을 때, 즉 감관이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동시에 의식과 연결되고, 의식이 바늘처럼 감관을 감지하고 주도하여 실처럼 이끌 때, 바로 그때에야 ‘깨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깸의 뜻을 이렇게 규명한다면 잠 속에서의 꿈이 결과를, 상(像, image)을 전시하는 것으로 충분한 데 반해 깸 가운데서의 꿈은 과정을, 경로를 설정하고 개진하는 상상력(想像力, imagination)을 필요로 한다고, 혹은 수반(隨伴, accompany)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깸 가운데 꿈은 내가 바라고 그리는 것을 실현하는, 그것이 내려와 실현되는 것이든 내가 올라가 그것과 만나 구현하는 것이든 아무튼 구체화하는 ‘경로’를, 길을 만드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단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다고 할 만한 것인 까닭은 그 안에 충만감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우리 스스로가 살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느낌이 우리를 복되게 하고 보람차게 합니다. 그리고 꿈-꾸기는 우리가 이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개연성을 계속해서 확장하여 줍니다. 꿈꾼다는 건 살아감이며, 살아감에 있어 지금 살아 있음에 동원된 것 이상을 욕망하고, 의지하고, 수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여정이 곧 꿈꾸는 삶이고, 꿈꾼다는 것입니다.
감히 꿈꾸십시오.
‘감히’라고 말할 수 있게 꿈꾸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그대가 꿈꾸는 대로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꿈꾸지 않은 대가로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갈 것입니다.
메마르고 쪼그라들 것입니다.
꿈은 술과 같이 덧붙이는 게 아니라
물과 같이 필수인 것이며
물처럼 바랄 뿐 아니라, 쓸 뿐 아니라
그것이 그것대로 이미 나인 것입니다.
나무에게
바람이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