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누비기_리더 아니, 리더십에 대한 생각
지난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습니다.
그이는 생전 ‘선생님’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단순한 정치인과 다른 층을 지니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김대중은 뛰어난 대중 연설가였고, 앞서 탁월한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상당한 부를 이룩한 그는 인민군에 붙잡혀 죽을 위기를 넘기는 등 생사를 넘나들며 사회에 대한 이상을 품고 우선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거인이니만큼 본인의 구술과 연설, 강연, 관련자들의 증언, 평전과 생애를 다룬 만화, 그의 정책과 정치 역정에 대한 찬반 저술, 외국 신문에서 싱가폴 총통과 주고받은 지상(紙上) 토론 등 그의 사유와 행적은 객관적 자료와 다양한 주관적 평가 들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이 16주기이며, 그가 육이오(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시기 대통령에 취임한 때로부터는 대략 삼십 년, 한 세대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그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그건 자료가 많고 찾기 쉽습니다), 여러 명의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 이미 서거한 그이와 우리의 연결점을 이야기할까 해요.
그가 한 일은 공동의 목표, 공통된 방향을 설정한 데서 행위의 올바름을 찾을 수 있고, 그이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우리의 산업과 문화가 형성되고 전개된다는 데서 결과・영향의 알맞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구제금융 제공에 부가된 조건들, 기업 구조조정, 외국자본의 수용, 노동 유연화(비정규직 양산, 쉬운 해고) 등은 주어진 것으로서 바꿀 수 없던 것이었고, 여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맡겨진 일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기 동안 정부 문서들이 전자화됐고, 공공 일자리를 확장했으며, 여러 개로 조각난 의료보험과 연금을 통합하였습니다. 다양한 복지 제도를 밀어붙이며 ‘성장형 복지’라는 구도를 제시하였고, 분단 이후 처음 남북의 정상이 만나 회담하였습니다.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정상으로서 인정받으며 주요 선진국들과 교류하고 우려에도 자신감을 내비치며 일본 문화를 개방하고, 문화 사업에 대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관철하였습니다. 전국에 광통신망을 설치하고 IT 강국이라는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은 3,800억 달러대이던 국민총생산(GDP)가 2025년 1조 9천억 달러 규모로 거의 5배 성장하였고, 국민총소득(GNI) 역시 3,800억 달러대에서 (세계은행 발표 2023년 기준) 1조 8천억 달러 규모로 약 5배 확대되었습니다. 1인당 GNI도 8,000달러에서 2023년 3만 5000 달러 대로 약 4배 상승했습니다. 인구증가를 대입해 보정해도(이 기간 약 10% 인구 증가) 1인당 GDP는 약 4배, 1인당 GNI는 약 4.12배 증가하였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2.26배 증가한 미국, 1.06배 증가한 일본, 1.97배 증가한 독일 등과 비교하여도 큰 폭의 성장입니다. OECD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군사 독재 시절에 역시 경제가 크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이 그릇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성장뿐 아니라 복지를 도모하는 가운데 더 큰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뚜렷한 사실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의 산업구조도 변화하여 소비재 하청 공장처럼 기능하던 산업이 첨단소재와 기술 위주로 변화하였고, 특히 다방면의 문화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노동 유능력자를 복지 대상으로 포섭하는 등 한국형 복지국가를 시작한 것은 말 그대로 ‘격변의 시기’에 사회정책과 한 국가공동체의 운영방향을 결정지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지금 우리는 김대중 체제를 살고 있다”고도 합니다.
1841년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세계사의 근저에는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영웅(heroes), 거인(great man), 천재(genius)와 같은 탁월한 개인이 역사의 전환점을 만든다고 본 것입니다. 칼라일의 ‘위인사관’(Great Man Theory)은 19세기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 20세기 들어서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영웅이나 초인, 천재가 아니라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는 창조적 소수”라고 반박하였습니다. 도전에 응전하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토인비는 1934년부터 1961년까지 30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12권에 걸친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라는 저작을 통해 지난 세기 유행한 위인사관을 비판한 것입니다. 그는 이 방대한 연구의 첫 권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It is not the hero, the superman or the genius who makes history, but rather the creative minority that responds successfully to challenges.”
(역사를 만드는 것은 영웅이나 초인, 천재가 아니라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는 창조적 소수다.)
이 소수 집단은 다윈이 『진화론』에서 ‘적자생존’(適者生存)처럼 우수해서가 아니라 환경의 도전에 맞는 답을 내어 적응한,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한 이들인 것입니다.
이 응답을 받아들이더라도 도전의 성격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집단에 이를 설득하고 관철해내는 리더의 비전은 분명 필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물은 귀하고, 선의를 지니고 헌신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이들이 실패를 겪는 중에 그들이 발휘한 탁월함과 그 탁월함을 발휘하도록 그를 밀어올린, 다시 말해 리더가 아니라 지도자와 대중이 함께 만드는 ‘리더십’이 올바른 비전과 실천을 이루고, 구조를 만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대중은 생전에 대중민주주의(大衆民主主義)를 역설하고 평생 ‘대중 경제론’을 폈습니다.
그는 요즘 말로 하자면 집단지성을 믿었고, 나아가 인간 본성 안에 깃든 선함을 믿은 사람입니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긴 세월 노정한 그가 순진해서가 아니라 부조리와 고통을 꿰뚫고도 신념을 형성하는 통찰이 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드는 힘이 소수의 영웅이나 거인, 천재가 아니라 집단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 ‘올바른 결정을 하는 소수’가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역사 해석의 명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는 집단이 함께 리더십을 형성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노무현)이 필요하단 말일 수 있습니다. “함께 살자”거나 “대동 세상”(大同 世上)의 꿈이기도 할 겁니다.
고 김대중 선생이 자전적 에세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1993)에 쓴 구절을 옮겨 봅니다.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합니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 유일하게 현명하고,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국민에게서 배우고 국민과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오판도 패배도 없습니다.”
그대는 현명합니까.
그대는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대는 함께 배우고 같이 가는 사람입니까.
이 물음들은 역사와 인생의 모든 순간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 말은 마치
“누가 내 이웃입니까?” 묻는 말에
“너는 누구의 이웃이냐, 너는 좋은 이웃이냐”라고 되묻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이웃 곧, 현명한 시민 들만이
역사를 누빕니다.
낱낱의 행위라는 실을 누벼
역사라는 천을 짓습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