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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읽기? 시인 불멸의 선포에서 독자 불멸로….

by 이제월


기원후 8년경,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 43 BCE–17 CE)는 『변신』(Metamorphoses)이라는 저서를 탈고하였습니다. 이 책의 한국어본은 흔히 『변신이야기』라고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몇 개의 번역본을 찾아 읽을 수 있고, 다른 서양 고전을 읽던 도중 『변신』을 인용하는 구절을 자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독재관으로 공화정의 숨통을 끊은, 그러나 정식으로 황제의 관을 쓰지는 않았고, 그러나 여러 언어에서 황제, 절대지배자의 대명사가 된 이름을 제공해 준 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44)의 양아들로서 제도적인 황제 체제를 만든 인물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Gaius Octavius, BC 63–AD 14)의 통치 시대 호시절을 보냈습니다. 기원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라는 뜻으로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호칭을 받은 옥타비아누스는 사실상의 황제였음에도 직접 황제의 이름을 받지 않고 로마의 ‘제1시민’이라고 자처하였습니다. 그러나 후계를 정하고 사실상 제정 로마를 출발시켰습니다. 오비디우스는 이러한 로마 황실의 정통성을 그리스-로마의 신들, 구체적으로는 올림푸스의 제왕 유피테르(Iuppiter / Juppiter) 즉, 제우스(Ζεύς, Zeus)까지 이어서 찬양한 로마판 용비어천가를 지어낸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인물은 동시에 『사랑의 기술』(Ars Amatoria)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에리히 프롬의 작품 『사랑의 기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도리어 대척점에 선 작품입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 들어가기 이전 로마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과시적인 그리고 문란한 생활상을 묘사하고 풍자했습니다. 예언과 운명적 사랑에 대해서나 유혹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당대 상당한 인기를 끈 작품입니다.

『변신』으로 장장 15권에 걸쳐 아우구스투스의 정통성을 빚어내고 노래했지만 『사랑의 기술』 한 권의 타격이 더 컸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 법과 도덕이 지배하는 질서를 수립하려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딸 율리아와 손녀 율리아가 모두 그에 뜻과 달리 구질서의 행태를 보이다가 간통죄로 추방당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직계 자손이더라도 손속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지요. (이러니 다른 귀족들과 평민들의 두려움은 더했을 겁니다. 동시에 신망도 컸을 거고요.) 아우구스투스는 오비디우스가 직접 자기 딸과 손녀 들과 바람을 피운 건 아니더라도, 혹은 후대의 호사가들이 추측하듯 목격 또는 방조, 소문 내기 등으로 연루된 건 아닐지라도 저 책의 인기와 더불어 아우구스투스 일가의 추문 또한 널리 퍼져 황제의 체면을 구겼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변신의 마지막 권을 탈고하던 그해(AD 8) 제국의 제1시민은 제국의 제1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오비디우스를 흑해로 멀리 유배 보내버립니다. 오비디우스는 끝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사망하고요.

그의 책 『변신 이야기』는 여느 신화나 설화처럼 구전되고 무수한 판본이 떠돌던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엮고 가려 현대인들이 아는 모습으로 표준본을 세운 역작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후 고대 후반의 찬란한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세워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이 책의 마지막 권에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별자리로, 즉, 성좌(星座)로 올립니다. 고대 신화의 영웅들이 인간이었지만 별이 되면서 신격을 받는 것을 떠올려 주는 수사(修辭)이지요. 다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신격화를 노래한 구절입니다.


interea caeso Caesare, fortuna querelis

invidit, quod non alio quam Caesare victus

esset, et ut claret, sidus Iulium, …

카이사르가 살해되자, 운명은 로마의 탄식조차 시기하였다. 카이사르는 다른 누구에게도 아니라 카이사르 자신에게 패한 셈이었고, 그 결과 하늘에는 율리우스의 별(sidus Iulium)이 빛나게 되었다.


— 15권, 745-747.


그리고 그는 이름(가이우스)의 후계자, 헤레스 노미스(heres nominis)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가 모든 걸 계승한다고 함으로써 이 신격을, 신들의 왕 유피테르(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에게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지금 건설되는 로마 황가에 부여합니다.


hic sua progenies hunc excipietque locumque

caelestem capiet, simulacraque nostra colentur.

hic quoque virtutes nostras superabit et omnes

ferre labores unus erit …

그의 후계자(아우구스투스)가 이 자리를 이어받아 하늘의 보좌를 차지할 것이며, 우리의 상들이 제향을 받을 것이다. 그는 신들의 덕을 능가하며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질 것이다.


— 15권, 820-823.


이쯤 되면 아부가 너무 심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생각과 필설은 달랐습니다. 그는 로마 황실을 한껏 추켜세운 뒤, 결국에는 시인의 불멸을 선언합니다. 상대를 높였으니 상대보다 높은 자신은 구구절절 외울 것 없이 그저 몇 마디 얹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 parte tamen meliore mei super alta perennis

astra ferar, nomenque erit indelebile nostrum.

quaque patet domitis Romana potentia terris,

ore legar populi, perque omnia saecula fama,

si quid habent veri vatum praesagia, vivam.

그러나 나의 더 나은 부분은 영원히 높은 별들 위로 날아갈 것이며, 나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권세가 미치는 땅마다 나는 사람들의 입으로 읽히고, 모든 세대를 거쳐 명성 속에 살아 있으리라. 시인의 예언이 진실하다면, 나는 살 것이다.


— 15권, 875-879.


오비디우스가 황제의 권위(Authority)를 높이기 위해 얼마나 애썼고, 그게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는 제가 술회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로 넘치는 좋은 연구와 해설 들이 있으니 제가 보탤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인의 불멸을 노래한 것을 장차 세기를 관통하며 불어닥칠 저자(Author)의 저자성(Authority)을 찬양하고 예고한 것이란 말을 보태고 싶습니다. 결국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도 오비디우스, 시인의 이름과 그의 작품들은 남았습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조차 그가 건설한 언어의 세계, 상상계의 힘과 질서 속을 살아갑니다. 황제의 통치는 끝났지만 시인의 통치는 계속되고 있으며, 상상계는 기어코 현실계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20세기의 위대한 작가들은 ‘저자의 종말’을 외치고, 이제부터 독자의 시대, 모두가 저자이므로 저자의 저자성은 더는 어떤 권위도 갖지 않으며, 권위와 해석의 권한, 창조력의 태반이 독자에게 옮겨간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선언은 문학부터 시작해서 미술 등 예술의 전분야로 확산됐습니다.

영화는 좀 실망스럽지만, 원작 웹소설과 이를 각색한 [원작 대비 다소 아쉬운] 웹툰이 하나 떠오릅니다. 싱숑 작가의 「전지적 독자 시점」. 이 작품은 시인의 불멸을 독자의 불멸로 전이(轉移)한 성공적이고, 노골적이고, 상징적인 서사(敍事, narrative)를 펼쳐 보입니다. 그 솜씨가 빼어나서, 그리고 감추거나 돌리지 않고 뻔뻔해서 딱 서양 문명의 한 줄기를 형성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을 떠올려 줍니다.

시인 불멸, 저자의 불멸에서 독자의 불멸로의 이 시적인 ‘변신’이 앞으로 어떻게 더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우선 그 첫 번째 ‘변신’을 맛보기를 권합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그냥 신들이 변신하는 이야기다,가 아니라 고대의 신화를 자연에 신격을 부여한 것으로서 해석함으로써, 자연의 본질을 예측 불허한 변화무쌍함으로 해석하고 황금시대로 지칭한 뒤, 이어지는 은의 시대(제우스의 통치), 청동 시대(갈등과 분쟁의 시작), 철의 시대(전쟁의 시대)로 타락하고 퇴보했다는 서사 후에 이제 로마 제국이 등장해 가이우스이 혈통 아닌 ‘이름의 계승’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열린다고 노래합니다. 당대에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의 방탕함에 눈살을 찌푸리고 의구심을 품던 독자들이 거기에서 인격의 반영인 신격 대신 자연의 반영인 신격을 발견하여 이해하고, 이로써 신들의 세계가 어떻든지 땅의 질서는 어떤 법적, 도덕적 토대 위에 놓을지 상상하고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떤 새로운 시대와 도덕을 만들어 낼까요?

읽고 맛보고 상상해 보세요.

새로운 시대의 레시피를 만들어 보세요.



저자의 시대를 접으며

독자 요리 대전이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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