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영웅과...
역사를 보면 당시에나 또는 지금까지도 영웅시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한꺼풀 벗겨서 다시 보게 되는 순간, 재평가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지금 그들의 면면을 일일이 호명할 뜻은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를 새겨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가끔씩 꺼내 보기를 바랍니다.
영웅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바를 채우는 이, 그 성공이 살아갈 희망을 주기 때문이며, 이때 그 성공이란 반드시 외적에 방어하여 승리하는 걸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떤 뜻을 드러내면 되는 겁니다. 뜻을 꺽지 않는다면 붙잡혀 죽어도 영웅이고, 대업을 이루지 못해도 영웅입니다.
영화 <한산>에서 붙잡혀 온 왜구가 “대체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이순신에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지.” 하고 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실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유교적 명분론의 세상에서 저런 대화는 있음직합니다. 이익 대결이 아니다, 불의한 데 대해 떨치고 일어나는 의로운 행위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웅서사들이 무의식적으로든 또는 의식적으로든 빼먹고 잊는 것이 있습니다.
민초(民草)들.
민트 초코 말고, 민중들, 풀뿌리가 되는 아무것도 아닌, 이름조차 없는 백성들을 말하는 겁니다. 서구적인 혹은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시민이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시민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양복을 차려 입은 것 같은 꾸밈이 느껴집니다. 저는 아무래도 민초가 좋습니다. 말이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이지 우리가 무슨 권력을 쥐고 써 보겠습니까. 우리는 민초입니다. 목소리 없는 자들.
사회적으로 목소리 없는 자들이 민초입니다. 그들을 대변하면 영웅이고, 그들을 대변하지 못하면 영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웅은 민초들로부터 나옵니다. 민중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뚝 떨어지는 메시아일 수 없습니다. 모순의 한가운데서 자라나 이 모순을 어느 만큼 지양하는 이들이어야지 때묻지 않은 어디선가 내려온 외계인일 수 없습니다. 이계의 신이 아니라 이웃 중 용기를 낸 사람, 그들이 영웅의 자질을 갖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웅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정말 늘 있어야 하고, 챙겨야 하고, 살려야 하고, 희망이 거기 목줄을 달고 있는 것은,
민초들입니다.
앞으로 어느 입장에서 어떻게 서술한 역사를 읽든 현혹되지 마십시오. 일반 역사든 군사, 정치외교, 경제, 예술, 과학, ……다루는 게 무엇이든 거기 기술된 영웅들은 ‘영웅적 결정’이나 ‘영웅적 행동’을 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웅됨은 민초들과 이어져 그 피가, 그 뜻이 통하는 동안 의미 있습니다. 거기에는 당장 눈앞에 닥친 어떤 문제를 푸는 여망도 있지만, 민초가, 짓밟히는 하잘것없는 ‘내’가 ‘내 가족’ ‘내 이웃’이 ‘중요하다’고, 가치롭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내 가치를 발견하고, 느끼게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 열망. 그들이 ‘세상에 참여하게 하는 희망’만이 진짜 희망입니다.
명예의 전당은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보이는 것이든 가상의 것, 개념에 불과하든.
벽을 허물어 같은 바람이 통하고, 같은 볕이 내리쪼이고, 같은 맞아야 합니다.
진짜 영웅은 꿈꾸고, 꿈을 전한, 꿈을 이루려 소위 ‘앞장세운’ 영웅들의 손과 발이 되어 준 이들. 그 진짜 ‘힘’이 영웅입니다. 진짜 영웅은 민초-들입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