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편이야?
우리 삶에 여러 층위가 있지만, 가장 낮은, 낮다고 하찮다는 게 아니라 나머지 전부의 기반, 베이스(base)가 되는 층이 있습니다. 이건 ‘생존’에 대한 것이지요.
살아남아야 잘사는 것도 바랄 수 있지요. 그러나 살아남겠다고 아주 잘못 살면, 그것도 살았으되 살아 있지 못한, 이미 죽은 삶일 수 있고요.
아무튼 이런 까닭에 맨 먼저 갖추어야 할 능력은 피아식별, 적과 아군을, 내편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능력일 겁니다. 이는 모든 동물이 갖는 능력이고, 시도하는 행동입니다. 내 편인지 아닌지, 나를 해칠지 해치지 않을지. 이 판단을 마쳐야 머물거나 떠나거나, 내쫓거나 품거나, 좇거나 달아나거나 할 수가 있죠.
그런데 남이 내 편이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좋은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라면, 예스럽게 말해서 ‘태평성대’에야 도적도 없고, 강도도 없고, 서로 친절을 베풀고 여흥을 돋구려고나 할 테지만 인간세상은 어찌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습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는 그 덕에 우리를 자극하지요.
남은 다른 사람이라 마음대로 내 편으로 만들 수도 없고, 내 편이 되었더라도 언제 뒤집힐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한편으로는 내 편을 찾아, 소통을 바라며 갖은 수를 다하지만 뜻대로 할 수 없고, 행운에 감사하는 것 정도만 재량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 우리는 소통을 바라면서 끊임없이 헤어지고, 외롭고, 주변을 외롭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럼 정말로 내가 뜻대로 할 수 있는 이는, 내 뜻에 꼭 맞는 이는 전혀 없는 걸까요? 이 무능을 어찌하지요?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운이 좋은, 절세의 행운아 같은, 뭐 이상한 억지 치트 키(cheat key) 말고요. 진짜로 있어요.
바로 나.
나는, 내가 내 뜻대로 해 볼 수 있어요. 안 될 때도 있겠지만, 하면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것도 나름 힘들고, 시간과 공이 드니까 그만두기 십상(十常)입니다. 붙잡을 목표, 이유, 동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내일의 나’를 제안합니다.
오늘의 내게는 단순한 쾌락과 회피가 더 이로울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생의 마지막 장면이라면 말이죠. 오늘 나는 그래서 외롭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내일의 나를 위해 일할 때,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 편이 되는 것이고, 미래의 나는 그 옛날 — 지금 내게는 오늘 — 의 나를 돌이켜 감사할 것입니다. 나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내일의 나가 더 내일의 나를 위해서도 때로 인내하고, 때로 감내하는 이유가 되어줄 거예요.
내일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위해 행동을 제어하세요. 책임의 가능성을 키우고, 키우고, 키우고, 키우세요. 내가 나를 위해 더 믿음직한 사람이 되게. 나만은 나를 외롭게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
내일의 나에게
'나는 너의 편이야' 하고 말해 주세요.
그대 자신의 편이 되십시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이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무에게
바람이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