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매>(靈媒). 나에게는 최고인
감독/박기복, 나레이터/설경구
2002년 공부방에서 지내며, 그 자유로운 특수성에 힘입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열 편 가까운 영화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중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바로 <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입니다.
이 영화의 객관적 가치 또한 높이 사고 싶지만, 그 부분을 논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 영화가 무속(巫俗)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개선할 만큼 명료하고 친밀하다는 점,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진짜 무당들을 필름 안으로 불러들였다는 점,
호기심과 우려를 잔잔한 감동으로 씻겨 준다는 점,
이런 등등의 특질들은 내게 결과일 뿐, 이 작품의 매력 자체는 아닙니다.
<영매>의 매력점은 바로 영매 자신들입니다.
그들의 인격과 인생은 고스란히 내 가슴에도 콕콕 박혀오는 것이었으니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그가 속한 공동체에게 어떤 뜻을 지닐 수 있는지
그가 그런 여러 사이짐 가운데 어떤 역할을 맡아 할 수 있는지
영화는 내내 질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은 정녕 화해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화해의 끝은
결국은 저 자신과의 화해일 것입니다.
그렇게 내쳐진 운명, 그렇게 내몰린 운명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기꺼이’ 하고,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로 삼는 것.
기꺼이 끌어안는 것.
영매란
어떻게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이지 않습니까.
개인의 사랑에 함몰될 기회를 빼앗기고
그 빼앗김으로 말미암아 빠져든 이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그 누구보다 깊은 데까지 우리 속을 헤집고
우리 손을 잡아 끌 수 있는 것일 겝니다.
부산 바다에서 한참을 울었다던, 그 젊어보이는 만신을 영화관에서 뵈었습니다.
나이도 성미도 알 길 없지만
그 날 그 자리에 서기까지 걸어온 그의 두 다리에
아낌없이 박수를 쳐 줘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눈물을 잊은 이들에게,
눈물을 허락해 줄 수 있는 영화입니다.
— 영화제 기간 동안 저는 이 영화를 두 차례 보았습니다.
몇 달 뒤 서울에 들렀을 때 때마침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하는 걸 보고 다시 관람하였습니다.
DVD를 구하고 싶었지만, 이미 품절됐다 하여 누군가 올려둔 파일을 유료로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고는 DVD를 ‘구워 놓았’습니다.
영화를 세 번째 볼 때,
나는 여남은 명이 앉아 있는 자그만 상영관에서
영화의 처음부터 마구 울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순수히 타인을 위해, 타인에 매인 자신을 느끼며, 기꺼이 매이며 이로써 힘겨워 본 이들은
그 눈물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또한 그 눈물을 흐릴ㄹ 줄을 믿고 바랍니다…….
이 영화에 별점을 매길 요량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가슴에 박힌 별은 표시할 수 있겠습니다.
2002년 당시에 ★★★★☆
세월이 지나 2025년이 되기까지 <만신>과 <사이에서>가 나와 보고 나니 더욱 값어치를 느끼어서 지금 이 자리에서는 ★★★★★ 입니다.
덧말) 이 영화 재개봉하면 좋겠어요~ 어디다 말해야 하죠?
休
*하이퍼텍 나다는 지금은 사라진 예술영화 전용관입니다. 1995년 <희생>을 보았던 ‘동숭씨네마텍’을 이어받은 영화관이었고, 좌석마다 영화관을 만드는 기금에 함께 한 문화인, 각양 각색의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아마 그때 서태지 좌석? 그런 데 앉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