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啓蒙, enlightenment)에 대하여
계몽(啓蒙)이라는 말을 알 거예요.
영어로는 enlightenment라는 표현을 쓰지요.
여기에 정관사를 붙이고 대문자로 시작하면(The Enlightenment), 인류사의 특정한 사조(思潮)로서 계몽주의를 가리키게 됩니다.
그런데 계몽이란 건 illumination으로도 표현합니다. 빛을 비추어줌, 조명을 뜻하지요.
불을 켜는 것과 빛을 비추어주는 것의 결과는 같겠지만, 계몽주의가 illumination을 피한 까닭은 일루미네이션이 신적 조명 즉, 신의 은총과 계시에 의한 계몽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라이튼먼트도 똑같이 신의 계시와 은총에 의한 계몽을 가리키는 데에도 쓰입니다. 둘이 혼용되었는데, 계몽주의 이후 의식적으로 근대의 계몽을 가리킬 때에는 일관되게 인라이튼먼트를 쓰는 겁니다. 왜냐하면 근대 계몽주의는 인간의 ‘가장 좋은 감각’(bon sens, good sense)로서의 이성(理性, reason)을 믿고 따라갈 유일한 등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기계 장치의 부품처럼 인간 안에 내재된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빛이 비추어들어오는 신적 조명을 떠올릴 수 있는 말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입니다.
계몽주의가 역사적으로는 그래서 무엇이 달랐을까요? 이는 1700년대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의문과 관련합니다. 이때는 온 유럽이 30년 전쟁 등 종교전쟁의 여파로 신음하던 때입니다. 사람들은 종전까지 신앙을 으뜸 가치요 기준으로 삼고 있었는데, 가뜩이나 이 종교전쟁은 그리스도교 신교와 구교 사이의 대립으로서 같은 성경을 따르고 대부분의 신앙 내용이 일치하고 몇몇 교리문답서의 답변이 다른 것뿐이었습니다(종교개혁 초기로 다가갈수록 우리는 신구교 사이의 내용상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입니다. 작은 차이인데, 이것들로 인해 부패 등 중요한 차이가 난다는 대립이었던 겁니다. 후대로 올수록 양자 사이의 차이는 더 커집니다. 그렇더라도 바깥의 뭇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차이나지 않아 보일 것입니다만). 이런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 차이일까 회의(懷疑)하던 사람들은 그보다는 신념의 차이를 서로 존중하고 화합해서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겠지요. 여기서 계몽주의의 중대한 첫 번째 사상이 나옵니다. 관용. 똘레랑스(tolerance). 이때의 똘레랑스는 신앙 문제에서는 서로 차이가 날 수 있다, 인정한다는 태도입니다. 반면 양보할 수 없는 건 덧셈과 뺄셈의 결과처럼 자연적으로 명백한 사실들로서 이를 명석하게 판별하는 이성이 중요해집니다. 계몽주의에 중요한 두 번째는 이성입니다. 이성은 논쟁할 수 있는 근거로서 여기서는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을 결속하는 원리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성은 어떻게 겨루느냐, 오직 실험과 증명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빈부의 차이, 피부색의 차이, 생김새의 차이 무엇과도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성은 신분의 높낮이와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이성에 기초해 도출한 인간 존엄은 모든 사람에게 상관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천부인권사상이 주창되고, 조만간 대혁명(The Revolution) 즉, 프랑스 대혁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계몽주의는 당대를 풍미하며 많은 이들에게 이성중심주의를 환기시켰고, 반발하여 낭만주의 또한 부추겼습니다. 어찌됐든 신앙의 차이조차 상호존중하는 계몽주의는 다양한 사상이 발흥하고 교류, 공존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계몽주의 위에 일어선 시민 혁명들은 자연스레 정교 분리(政敎 分離)의 입장에서 세속 국가를 열고, 이 세속 국가는 반이성적으로 설득력을 잃는 것만 아니라면 다양한 사상과 풍조를 용인하게 하였습니다.
전통의 종교적 신념과 무언가로 환원할 수 없는 보편적인 감각을 비롯해 전후하여 수많은 담론과 역사적 경험, 사건 들이 개입하지만, 특히 계몽주의가 ‘인권’의 탄생에 직접적이었고, 두고두고 인권을 신장시키는 배후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이는 계몽주의의 한계가 드러난 뒤에도 효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이지요.
우리는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회의하기 때문에 존엄합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이성을 가졌고, 대화 가능하고, 결속할 수 있음을 내보이는 증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하지 않기보다는 말하십시오. 묻지 않기보다는 물으십시오. 의심하지 않기보다는 성실하게 의심하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답을 얻지 못하겠지만, 합의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겁니다.
계몽주의는 언뜻 확실성을 추구할 뿐인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합의하고 불완전함을 공유한다는 데서 더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나의 진리는 너에게 진리가 아닐 수 있으므로, 너의 진리가 나의 진리가 아닌 것처럼 나는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한다. 이 태도가 계몽주의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비싼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고로 함께합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