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에 대하여
약속은 별 거 아니예요.
자기중심을 벗어나는 거예요.
나와 상대가 공동으로 중심을 형성하는 거예요.
더 큰 것이 중심이겠죠, 완전히 대등하진 못할 거니까요.
그러나 작은 것의 무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죠, 인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할 뿐.
이걸 잘 재고, 아니, 느끼고서
둘의 무게 사이의 중심, 그 중심까지 해서
두 개의 중심에 의해 돌기 때문에
천체들조차 ‘타원’으로 궤도를 형성하는 거랍니다.
(궁금하다면 못을 두 개 박고 둘 모두에 줄을 연결해서 연필을 돌려 동그라미를 그려 보세요. 타원이 나온답니다.)
그리고 이때, 큰 것은 작은 것을 넘지 못해요. 작은 것이 궤도를 결정하는 데
더 지배적입니다.
제가 ‘더’라고 했나요, 이런. 실수했어요.
바로잡겠습니다.
[상대관계 안에서] ‘완벽하게.’
약속을 지킨다는 건
내가 그리는 완전성 대신
상대와 나눈 말, 다짐들을
상대가 알아들었을 그 기준대로 행하는 일입니다.
달리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면서도
마뜩찮은 마음일 수 있어요.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나는 한다고 했으니까.
자기 의심이나, 품평 없이
지금 이대로, 지금 할 수 있는 대로.
그러나 물론 다가가려 하겠죠.
근사한 값에
좀 더 가고 싶을 거예요.
그게 진심이면 애쓸 거고요.
맞아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최선을 다하는 건 진심으로 하는 거고,
하지만 한계를 아는 거예요.
나아갈 줄도 알고
멈출 줄도 알죠.
냉정과 열정은
스스로 균형을 맞춥니다.
둘이 부딪치는 줄 아는 사람은
실은 아무것도
실제로는 해 보지 않은 게 탄로나는 것뿐이예요.
자, 나는 늘 부족하고
그래서
창피하게 저렇게 써서 낸다고?
싶은 만큼밖에 못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다인데.
나는 과소평가될 순 있지만
과대평가되진 않을 겁니다.
내가 대단해보인다면 틀림없이 그만큼은 대단할 겁니다.
이 점은 저의 정신건강과 인생에 충분히 유익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나는 치장하지 않습니다.
이게 정말이예요.
하지만, 이게 다일 때에도
언제나
더 있을 거예요.
그대도 알고 있을 겁니다.
나에 대해서나
그대 자신에 대해서나.
아무튼, 그러니까 우린
일단 약속을 지키며 살자고요.
해보자고요.
뭐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나무에게
바람이
休
*세상은 최소한 나와 너로 이루어져 있다.
무슨 일이든 둘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
이체문제도 못 풀고서 삼체문제를 풀 수 있을리야.
(삼체문제는 본래 못 푼다고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