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시와 현실

상처난 노래들 — 송창식이 노래하는 길

by 이제월



상처 있는 노래들이 좋다

상처난 노래들이 좋다

상처내고 상처인 노래들

그 노래에 맞갖은 드문 목소리들

목소리를 제 길대로 내는 드문 재능들

그들은 동주의 팔복에 드는 이들

사람이기보다 신에 가까우나

여전 사람이어 더욱 슬프고 숨 막히는.



송창식의 <사랑이야>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양양의 <오 사랑이여>


물기의 차이


존 레논(John Lennon)의 <이매진>(Imagine)을 부를 때 나로부터 세상으로 확장을 경험한다.

그러나 송창식의 <사랑이야>를 부를 때

나는 세상에 내 안에 남은 물기를 모두 내어준다.

부를수록 추운 사막의 바람이 분다.

이소라의 두 노래는 그에 비하면 언제나

제 몫의 물기가 남아 있다.

그게 바로 오지 않고 바람으로 오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먼 데서는 비가 온다는 걸 느낀다.

영영 비는 오지 않지만

비는 저기 비가 온다고 알린다.

세상에 물기 있다고 느끼게 한다 이 기억 상기 예고 때문에 노래는 나락을 보여 주고 살짝 맛보이지 나락에 떨어뜨리지 않는다.

송창식의 고비(Говь, Gobi)와 다르다. 사막. 뜨겁지 않고 목마른

춥고 다 태우는 거치른 땅.


양양은 폭풍우친다, 비를 쏟아붓는다,

떠내려가라고 다 잃어버리라고.

그래서 노래가 끝나고 개운하다.

내 처지는 바뀌었지만 나는 그대로다.

바닥에 동댕이치지만 평평한 본래 자리. 물은 지나고. 반드시 지나가고.


그래서 힘든 걸로 치자면 양양보다 이소라

이소라보다 송창식이다.

<이매진>의 존 레논은 종목이 다르다.

그래도 비교하라면 <사랑이야>에 한해 송창식이 더 윗길이다. 내 보기엔 그렇다.

거기는 자기를 부수고서만 가 닿는 곳.

자기가 부서진 게 아니라 부수어서 가 닿는 곳.

그러나 그렇게 낮추어도 높음을 지킬 것.

나 아닌 것 남김없이 부수어 순금처럼 빛날 때에 닿는

무인의 지경.

무경계에서

본디 물덩이인 몸이 바람이 지나는 성기고 거친 것이 될 때,

제 초상을 치르는 소복이 될 때.

그 소, 바탕까지 가면 사랑이야를 꼭같이 부를 수 있다. 노래의 주인이 된다.


부르는 복과

부를 수 없는 복 중에 선택하라.

그리고 이승에서 죽어야

저승에 태어난다.

아무것도 이르지 않으니 마음 가는 대로 뽑아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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