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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초인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by 이제월


독초인설(讀超人說)

초인에 대해 읽고 푼 썰.




이게 진짜 초인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 반! 장!


2004년 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그해 개봉한 영화 중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실은 매우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당시 영화를 보며 저는 니체를 떠올렸는데,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 Übermensch)은 다름아닌 이런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던 탓입니다.


헐리우드에서 영화 <슈퍼맨>(Super-man, 직역하자면 ‘초인’)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음악을 사용했지만

사실 그 음악의 웅장함에 비긴다면 슈퍼맨은 ‘황당’합니다.

(제가 영화 <슈퍼맨>과 캐릭터로서의 슈퍼맨을 모두 매우 좋아한다는 건 별개입니다.)


웅장한 것과 황당한 것 사이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크기’인데

숭고는 단지 크기만 가지고 승부하지는 않습니다.

크기만으로 감동이 결정되고, 미감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그간 보아온 숱한 블록버스터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특이합니다.

이 영화의 홍반장은 있을 법한 세계와 있지 않을 듯한 세계의 경계, 딱 거기에 서 있습니다.


홍반장이 하는 양을 보노라면 이거야말로 슈퍼맨의 모습입니다.

홍반장은 진정한 초인입니다.

뭐, 시작부터 멜로 코미디로 만들어진 거니까 사랑에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하지만

홍반장의 자질과 수고, 삶의 방식은 초인의 그것이라 아니할 수 없지요.


그는 이미 그 마을에서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신이 지니는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건 아닙니다.

그는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되 그것이 ‘자치’(自治)이게끔 만듭니다.


이는 소설가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선생님이 엄석대를 친 것을 반 아이들이 친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주려 한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교사는 학급의 구성원으로서 습합(習合)되지 못한 자입니다. (그는 또 다른 [외부의] 권력일 따름입니다.)

홍반장은 마을에 완전하게 속해 있습니다.

영화는 이를 더 완전히 만들려고(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열 살 무렵 양친을 잃고

마을에서 거두어져 마을이 키워낸 아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설정입니다.

세팅 좋고~


영화가 조금씩만 엇나갔더라면 상투적이거나 대수롭잖은 설정일 수 있습니다만

이 ‘소속’과 ‘역사’는 홍반장의 행위를

개인의 것으로 경직시키는 대신

개인의 자유로운 것인 동시에 하나의 숙명, 그러나 선택으로서

마을 전체의 어떤 ‘실현’으로서도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초월로서

개인의 행위가 갖는 개인성은 고스란히 남으면서도

그것이 일찍이 신에게 돌려졌던 ‘공의’(公義)로운 성격을 띠게 합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조금 어긋났더라면 컬트(cult)가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좀 더 어긋났더라면 <매트릭스>(Matrix) 같은 영화일 수도 있었겠네요.

마음에 안 들게 어긋났더라면 <포레스트 검프> 같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고요.

그러나 솔직히 말하건대 이 영화는 애초부터 위에 열거한 그런 영화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점이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가볍게 초인을 만나다니!

홍반장은 과도기의 인간입니다.

인간이 완전함에의 강박과 온전함에의 자연스러운 끌림 사이에서 무언가를 실현해나가는 모습.

그가 바로 초인입니다.


니체 선생이 들으면 어이없어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가 술 한 잔 들이키면 흔쾌히

홍반장을 초인으로 인정할 거라 믿습니다.

뭐, 짜라투스트라처럼 ‘가르치는 자’는 아니라도

홍반장은 충분히 제 생각과 마음을 세상에 미치고 있잖아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일치.

이는 일찍이 공자가 스스로가 이른 경지를 가리켜 한 말이었으나

유가에서도 어디에서도 스스럼없이 자유로운 무엇으로서 구현되고 제시된 적이 드뭅니다.

홍반장은 말입니다, 그 사이에 간격이 없습니다. 실은 좀 있지만, 별 문제가 안 됩니다.

그 조금의 간격이 없다면 홍반장은 초인인 대신에

기계이거나 신이었을 테니까요.

딱 좋아요. 딱 좋은 만큼

그는 평범하게 초인이 되었습니다.

별난 반장이 되었습니다. (조만간 통장이 되었단 소식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바로 오랜 동안 인류가

신에게 바랐던 그 편재(偏在)와 개입(介入)의 섭리(攝理)가 여기 실현되고 있지 않습니까?

신을 자처한 무수한 사이비 이단의 계보에서 이렇게 순일(純一)하고 무해(無害)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홍반장은 그들과 급이 다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별 생각없이 보기 바랍니다.

좀 생각하고 곱씹는 것도 권합니다.


그러나 아니라면,

그냥 재밌는 영화 한 편 보았으니

제가 여지껏 떠든 말은 다 구겨 버리거나

머릿속에서 쓰윽 지워버려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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