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부여하기. 문화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
요즘 뉴스를 보면 전쟁, 갈등, 증오 같은 단어가 끊이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졌던 ‘규칙 기반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나라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죠.
그래서인지 “이제는 각자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며 “각자도생의 세계”를 예고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피터 자이한,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하지만 정말 세상이 그렇게만 흘러갈까요?
한국의 현대사를 보면 다른 길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총 대신 노래로, 억압 속에서도 글과 교육으로 정체성을 지켜냈던 사람들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어느 문서에는 한글 때문에 통치하고 지배하기가 어렵다면서 조선인들이 한글에 대해 높이 여기는 마음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 무시하고 쓰지 않게 이끌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직접 확인해본 건 아닙니다만, 제국주의 열강에게 공통된 태도여서 그럼직하다고 여깁니다.)
김구 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이가 말한 ‘아름다움’은 부자가 되는 힘이나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백범의 바람을 조금씩 이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BTS의 노래,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은 우리 이야기이지만 세계의 마음을 움직였죠.
거기에는 화려한 기술보다, 상처를 견디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힘을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소프트파워(soft power) 라고 불렀습니다.
전쟁이나 돈으로 상대를 움직이는 대신, 매력과 공감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조지프 나이는 소프트파워를 명령권력과 대비되는 “공동선택권”이라고 풀이합니다. 마음을 열고 공감, 동의하여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니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호감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므로 기꺼이 선택하는 것. ‘친구가 되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소프트파워라는 학술 용어의 심장에는 ‘사람의 진심’이 자리합니다.
문화가 산업이 되면 돈을 벌 수 있지만, 마음을 잃는다면 금세 힘을 잃습니다.
한류가 세계를 감동시킨 건 세련된 포장 때문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중 어떤 건 그래서 그렇군, 그렇겠지, 이런 거야, 라며 쉽게 알아보겠는데 생각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깊이 전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아직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악귀/데몬들을 대하는 한국적 정서는 격멸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맺힌 억울함이나 슬픔을 풀어보려는 해원(解寃)의 자세가 서구인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점을 지적한 학자는 한국인에게는 그게 뭐 별 거인가 하고 전혀 떠올리지 않는 것을 어려서 캐나다로 건너가 캐나다 이민 2세나 다름 없는 매기 강 감독으로선 ‘아, 이거 별거네’ 하고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런 점을 서사에 중요한 맥락으로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진단하기도 하더군요.
지금 세계는 다시 혼란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질서 없음”(Disorder, 헬렌 톰슨)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튜브에서 음악으로, SNS에서 그림과 이야기로 서로 연결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이건 새로운 형태의 평화입니다.
폭력이 아니라 공감으로, 경쟁이 아니라 이해로 이어지는 연결 말이에요.
그대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 노래를 부르든, 기술을 배우든, 글을 쓰든 —
그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거나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면,
그건 이미 평화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문화가 아름다운 나라”,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그 위를 걸을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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