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나무야

순서가 있다: 수파리(守破離)

by 이제월


“守をもって始め、破にて進み、離にて極まる”

— 세이아미(世阿弥), 『風伝抄』(풍전록)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살았던 세이아미(世阿弥, Zeami, 1363?–1443?)가 쓴 『풍전록』(風伝抄, ふうでんしょう)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지킴[守]으로써 시작하고, 깨뜨림[破]으로써 나아가며, 떠남[離]으로써 완성된다.” (직역)



세이아미는 일본 전통 연극 ‘노’(能)의 대가인데, 그가 예술 수련의 원리를 논한 글이 풍전록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 검도나 무도에서도 많이 쓰는 표현인 ‘수’(守) ‘파’(破) ‘리’(離)를 처음 논한 것 같습니다.

일부 블로그 글 등에서 본래 불교용어라는 말을 보았는데, 확인해 보니 이보다 이른 출전을 찾지 못했습니다.



찾다보니 찾아서 끌어왔지만, 평소 제가 즐겨 쓰던 표현은

자유는 상태가 아니라 능력이다, 파격을 원하면 정격(正格)부터 익혀라, 정격을 다한 후에 파격(破格)을 시(試)하라, 정격에 못 미친 파격은 파격이 아니라 미달(未達)일 뿐이다, 자유롭지 못하고 못난 과거에 매여 있다고 고백하는 꼴이다, …….

정격 후에 파격.



할 것을 하지 않는 핑계로 우리는 자주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해내야 합니다.

해낸 뒤에야 머물지 않고 바꾸는 것이고

이 시(試)를 한다는 건, 나를 던지고 던지고 또 던지고 다시 던지는 일, 계속 던지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비로소

스스로 한 세계가 되어 별도의 존재가 되는 줄을 알 것입니다.

만일 달이 지구와 세게 부딪쳐 하나가 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본래 지구의 일부가 달의 일부가 되고

본래 달의 일부가 지구가 되어서

달이 멀찍이 떨어져 지금에 이르고

전에는 더 가까웠으나 장차는 더 멀어질 이 노정(路程)을 걷고 놓지 않았다면

지구도 생명이 있을 법한 곳이 아니었거나

그럴 만한데도 그러지 못하였을 것이고,

달도 달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수한 운석 파편이 되었거나

점점 붙들려 지구의 일부로 합쳐질 뿐 제 모습도 제 꼴도 제 길(궤도)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배우는 것은 개성을 잃는 일이 아닙니다.

제대로 알아지고,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제대로 했다면 변형하고 응용할 수 있으며,

그러다가 자신만의 고유한 일가(一家)를 이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도나 무도에만 해당하지 않고

모든 도(道)에 통하는 이치(理)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알기도 하거니와 믿고, 또 계속 그러함을 겪습니다.

그러니 배우고, 배우고 나서, 나섭시다.


아, 인공지능이 풍전록의 저 문장을 자연스럽게 의역하면 이렇다고 하는군요.


“예술의 길은 법도를 지키는 데서 시작해, 그것을 깨뜨리며 나아가고, 마침내 형식을 떠남으로써 완성된다.”


한 사람의 개성, 누군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길도 이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의 법칙처럼 정신의 법칙도 있다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집합의 원소로 인식될 터이고, 집합을 떠나 제 이름을 내세우겠으나

마지막에는 ‘내가 나다’라는 말 말고 어떤 다른 소개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 관계도 있거니와

궁극에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그러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고, 안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겁니다.


아무튼 정격부터!

수파리의 순서를 지켜 주세요.

입에 넣고 씹고 삼키고 소화하는 거지, 이 순서를 뒤집거나 뒤죽박죽 바꿀 수는 없는 겁니다.



나무에게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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