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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무아(諸法無我) —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일절(一節)

by 이제월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 不減


― 「般若波羅蜜多心經」 中 一部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이 세계, 모든 게 공(空)한 이 세계는 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 「반야바라밀다심경」 중 일부


제법무아(अनात्मन्, 한자로는 諸法無我, 팔리어: anattā, 산스크리트어: anātman)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삼법인(三法印: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중 하나로, 모든 존재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나 자성(自性)이 없다는 뜻이랍니다. 이는 어떤 것도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因緣)에 의해 잠시 존재할 뿐이며,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아의 핵심입니다. 인연에 의해 난다는 것은 ‘나’라는 실체가 따로 있지 않고, 맥락에서 사건 중에 이렇게나 저렇게 생겨난다는 것으로서, 따로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기에 그것을 법이요, 모든 법이 그러니까 제법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트만’(我, atman)입니다. 힌두 가르침 속에는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해서 우주적 실체인 으뜸신 ‘브라흐마’와 내가 하나라고 하는 사상도 있습니다. (최고위 카스트 브라만은, 이 브라흐마를 섬기는 사제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는 그 아트만이 없다고 말합니다. 단순하게 범아일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범아일여에서 나를 높이는 기준점인 그런 불변하는 범천(梵天, 산스크리트어: ब्रह्मा 브라흐마)도 부정하는 겁니다. 그런 가리켜 구별할 만한 건 없다, 그러한 색계(色界)는 부정하는 것이 불교, 적어도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담긴 부처의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고정된 아트만이 없다는 말이, 아트만에 부정접사를 붙인 아나트만(anātman)이며, 니르아트만(nirātman)이라고도 합니다. 아나트만을 가리키기 위해서 찾은 역어가 위의 무아(無我)입니다. 제법무아.

우리가 무아지경이라고 할 때, 무아의 경지는 나를 잃었고, 나를 잊은 것이지만, 바깥과 ‘구분하는’ 내가 없어진 것뿐 나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나의 속성은 이전처럼 규정되지 않고 바람과 함께 바람이, 물과 함께 물이, 불과 함께 불이 됩니다. 즉, 아나트만은 허무(虛無)를 가리키는 아닙니다. 무아의 정신은 허무한 것이 아니고 공(空)한 것입니다. 공하다는 것은 비어서 늘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법, 세상 모든 것이 무아, ‘나-없다’는 것은 나의 상실이 아니라 소실, 복권에서 당첨번호를 가린 은박을 벗긴 것입니다. 그래서 당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첨번호가 본래 따로 있던 것이 아니고 추첨에 의해 가려지는 것입니다. 행운의 숫자가 미리 정해져 따로 있지 않듯이 이 번호 혹은 저 번호가 하나의 사건으로 바로 그때 생겨나듯이, 존귀한 자나, 나는 본래 이런 것 따위는 없습니다.


그대를 가로막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도 그대를 붙잡지 않고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그저 그대의 일부입니다.

무엇이 태어났거나 죽어 사라진 것이 아니고, 무언 더럽고 무언 깨끗한 것이 아니며, 늘어남이나 줄어듦도 없습니다. 이걸 바라보는 정신에서는 독립운동도 할 수 있고, 민주항쟁도 할 수 있고, 양심적 시국선언도 할 수 있고, 선로에 뛰어들어 의인도 될 수 있습니다. 이걸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에 아상(我相) 즉, ātma-saṃjñā, ātma-lakṣaṇa이 가득하면, 다시 말해 ‘나’라는 생각, 이것이 나다, 저건 내가 아니다 하는 생각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비겁하거나 겁쟁이가 될 것입니다. 겁과 비겁 사이에서 정작 나를 지키는 것, 나를 세우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라는 건 딱히 없다고 인식할 때입니다.

이 인식을 유지하면, 우리가 얻게 되는 자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오류를 수정하고 진리에 더 깊이 다가가고 잠길 것입니다.


나를 가둔 것이 나입니다.

나를 벗으면 나는 세계와 하나입니다.

인연 따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일어나는 일은 볼 줄 알되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종이나 노예가 아닙니다.

부처의 가르침에서 ‘주인공이 되라’는 건

아상을 붙들어서가 아니라

아상을 버려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대가

평화롭고 기쁘기 바랍니다.

안 그럴 까닭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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