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기억 위에서, 무엇을 세울까(72년 뮌헨, 50년 인천)
1972년 9월 5일, 세계의 눈과 귀가 독일 뮌헨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서 열린 올림픽은 전쟁의 상처를 넘어 인류가 다시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행복한 경기장, 열린 올림픽’을 표방하며 경찰관에게조차 총을 들지 못하게 했고, 선수촌에는 국기와 언어,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한데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의 축제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 새벽녘 선수촌을 습격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실패했고, 구출 작전은 참사로 끝났습니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인질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고, 국제사회는 처음으로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맞닥뜨렸습니다.
뮌헨의 비극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는 제국주의의 유산, 분쟁으로 찢긴 중동 문제, 냉전의 정치가 얽혀 있었습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역사의 거대한 폭력의 구조 속에서 탄생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날의 총성이 상징한 것은 단지 인질극이 아니라, 인간이 폭력을 통해 정의를 세우려 할 때 어떤 끝에 도달하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22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또 하나의 9월이 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한반도 전쟁의 운명을 바꾼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군이 한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낙동강 방어선만이 남아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유엔군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서 상륙을 감행했습니다. 작전은 성공했고, 전세는 단숨에 역전되었습니다. 서울은 탈환되었고 북한군은 후퇴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곧 새로운 비극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곧바로 북진으로 이어졌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반도는 다시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군사적으로는 기적이라 불렸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전쟁의 비극을 연장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뮌헨과 인천. 하나는 국가가 아닌 조직이 저지른 폭력이고, 하나는 국가의 이름으로 수행된 폭력이지만, 두 사건 모두 인간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한쪽은 절박한 저항을, 다른 한쪽은 정당한 전쟁을 표방했지만, 둘 다 ‘목적을 위한 폭력’이 얼마나 쉽게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역사는 늘 그런 비극의 반복 위에서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단지 반복되는 순환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비극을 겪을 때마다 그것을 기억하고, 질문하고, 대응하며, 조금씩 진보해 왔습니다. 뮌헨 이후 국제사회는 테러 대응과 협상 체계를 정비했고,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도 전쟁을 억제하고 방지하기 위한 집단안보 체제가 강화되었으며, 유엔 헌장은 ‘전쟁의 승리’보다 ‘평화의 유지’를 더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이 “목적 그 자체”임을 잊지 말라고 했고, 야스퍼스는 “비극의 인식이 책임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남긴 참혹한 기억을 단순히 슬퍼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직시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책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 책임은 국가의 권력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평화를 원하는 모든 개인의 몫입니다.
두 사건을 다시 바라보면, 한 가지 공통된 진실이 떠오릅니다. 폭력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전세를 바꿀 수 있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만, 결국 새로운 폭력을 낳고 새로운 고통을 만든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실패한 수단’입니다. 진정한 해결은 무력의 승리가 아니라, 폭력의 구조 자체를 넘어서는 지혜와 제도, 그리고 공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전쟁은 멈추지 않았고, 테러는 형태를 바꾸어 계속 나타나며, 생명은 여전히 정치적 계산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비극은 우리에게 하나의 사명을 남깁니다. 그것은 “비극을 잊지 말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뮌헨에서 무너진 평화의 축제를, 인천에서 이어진 전쟁의 고통을, 우리 시대에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새로운 전쟁을 막는 국제적 규범일 수도 있고, 분쟁의 뿌리를 치유하는 외교의 언어일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생명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는 문화와 교육일 수 있습니다.
비극은 우리를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그것을 통해 인간은 ‘다시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을 배우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며, 더 깊은 윤리적 성숙을 향해 나아갑니다. 인류의 진보는 기술의 발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비극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끊임없는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비극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발판 삼아 평화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평화는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자연은 약육강식이고 전체의 균형을 찾을 뿐, 그 안에 있는 개별자들이 저마다 행복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균형판 안에 들어갈지는 각자의 처절한, 블라인드로 가려진 채로 달려가야 하는 절규와 함께 한 몸부림에 맡겨져 있습니다. 자연 안에 있지만, 자연을 딛고 서서 평화의 이념을 세운 우리에게도 평화나 질서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동하고, 책임을 지고, 다음 세대를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행하라>.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닙니다.
그리스어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ς, anámnēsis)는 – ‘위로’, ‘다시’, ‘되돌아’(back, again)의 뜻을 가진 접두사 아나(ἀνά, aná)와 ‘기억’, ‘회상’(memory, remembrance)을 뜻하는 명사 ㅁ(음)네시스(μνήσις, mnēsis)의 결합인데, ㅁ네시스는 동사 μιμνήσκω (mimnḗskō) ― ‘기억하다, 상기하다’ ― 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ς)는 문자 그대로 “다시 불러오는 기억”, 즉 “회상” “되새김” “되살아나는 기억”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일찍이 성찬의 전례 중 성변화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때로는 미사전례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미사에서 사제는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하는데, 이 명령, 신언(神言)이자 신명(神命)은 구원의 실현을 약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기억한다면, 행하여졌던 그 일이 다시 행하여진다는 것. 즉, 이 기억은 이미 ‘이룸’입니다.
아남네시스는 사실 그리스도교 안에 자리잡기 전 플라톤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특히 『메논』(Μένων)과 『파이돈』(Φαίδων)에서 <영혼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기억해내는 행위’>를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이때 ἀνάμνησις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잠재된 진리·본질을 재인식하는 철학적 회상을 의미하지요.
뮌헨과 인천이 남긴 두 개의 9월이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비극을 기억하라.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 기억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라.” 그럴 수 있다면, 여기 올바르게 응답할 수 있다면, 역사의 우연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필연일 것입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