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나무야

기록하는 힘 — 사실을 창조한다

by 이제월


기록하는 습관을 이야기하는 많은 조언들이 있지만 가장 신비로운 부분을 언급하는 일은 드물더군요.

그건 바로 기록이 창조 행위라는 점입니다.

비단 시나 소설, 희곡 또는 수필을 쓰는 것만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그런 ‘창작’이 아니라 단순한 인상의 기록, 단상을 적는 것이라도 기록은 ‘창조’입니다.

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 안에 일점 일획도 추가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존재하는 물리적 성질의 모든 것들이 하나도 더해지지도 덜어지지도 않음을 확고한 진리로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특정 종교의 교리에 기대지 않고도 우연이 빚어낸 ‘피조물’입니다. 이 하나의 크리쳐(creature)로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은 본래적으로 절망입니다. 혹은 무지의 영역을 긍정한 감사.

비록 낙관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는 수동적 존재입니다. 창조는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블랙홀이 한 일인지, 자연발생 빅뱅인지, 신의 기획인지 몰라도 우리는 비극적이게도 ‘창조적 충동’을 느낄 뿐 실제로는 창조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저것 변형은 하지요.

변형과 변성만으로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조차 우리의 것인지 항상 의문이 남습니다.


그러나 뭐가 어떻든 명백해 창조인 것이 우리 손에 들려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경로로인가 진화상 얻어낸 언어, 더구나 말을 담는 그릇, <문자>는

기록을 통해

<의미>를, 의미라는 종류의 혼을, 의미라는 종류의 영을 창조합니다.

글자는 에너지 보존 법칙 안에 있어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았고,

엔트로피 법칙 안에 있어 점점 흐려지고 지워져 사라지지만,

그 안에 있는 의미는 쓰여졌음으로 인해

그 의미를 아는 자에게 읽히고, 그 의미를 알고, 읽는 자에게서 발현됩니다.

이 엄연한 사실은 기후나 지리 현상처럼 직접 환경을 바꾸고 ‘다른 적응’을 유도합니다.

읽은 자는 읽지 않은 자와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것은 그냥 생각이나 상상이 아닙니다. 착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록한 것은

우리 자신의 가장 하찮은 것조차

나를 떠나서, 나와 무관한 자에게까지 닿을 수 있게

그러나 오직 ‘의미’를 아는 자끼리만 통하게

신비롭게 새겨집니다.

신비롭게 이 세상에 우뚝 서 있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 엄존(儼存)은

참으로 존엄(尊嚴)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록함으로써

의미로 충만한

사실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사실이므로, 이 사실에 기대어

변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기록하십시오.

부끄러운 것조차 기록하십시오.

언젠가 지우더라도

하찮고 우스운 것도 기록하십시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어서

물리적으로는 우주에 끼치는 바가 없다 해도

의미로서 나를 통해, 누군가를 통해

온우주를 혁명합니다.

운명을 바꿉니다.


기록을 남기고

기록을 딛고

기록에 올라타서

우주를

한 겹 더 깊은 데서 영위하세요.


그대의 태어남이

그대의 자격입니다.



나무에게

바람이





작가의 이전글예람이에게 | 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