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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마이에우티케(μαϊευτική)—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by 이제월


우리가 흔히 철학이라고 들으면 어렵고 추상적인 말, 머리 아픈 개념, 시험을 위한 지식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산파”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를 세상으로 나오게 돕는 산파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있는 생각을 ‘질문’을 통해 끄집어내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법을 ‘마이에우티케(μαϊευτική, maieutikē)’, 즉 산파술(産婆術, Maieutics)이라 부릅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만나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이런 상황에서도 성립할까요?”,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질문을 거듭하며 그는 상대방이 스스로 모순을 깨닫고, 점점 더 깊고 정교한 생각에 다다르도록 이끌었습니다. 핵심은 ‘답을 주지 않는 것’이고, 대신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히려 빠르게 변하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사고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질문보다 대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정해진 답을 외워야 하고, 발표나 토론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능력이 높이 평가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은 대부분 명확한 ‘정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100% 옳다고 단정할 수 없는 선택과 가치 판단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대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직업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려 볼까요? 많은 분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나 “안정적인 직장” 같은 대답을 쉽게 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식 질문을 던져보면 생각이 깊어집니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지만 하루 14시간씩 일해야 하는 직업도 좋은 직업일까요?”, “안정적이지만 평생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그것도 좋은 직업일까요?”, “좋음이란 누구의 기준에서 정의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질문들이 이끄는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처음에 ‘좋은 직업’을 단순히 외적 조건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내가 원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지요. 질문이 생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순간입니다.


‘μαϊευτική(마이에우티케)’는 철학 수업이나 토론장에서만 쓰이는 방법이 아닙니다. 친구, 가족, 동료와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가 “나는 그냥 사람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질 거야.”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만약 그 일을 싫어하게 돼도 계속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친구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은 사랑만 있으면 다 돼.”라고 말하는 연인에게도 “사랑만 있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오래 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랑이란 감정일까요, 아니면 노력까지 포함하는 걸까요?”라고 물어본다면 감정적인 논쟁이 아닌 가치에 대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말을 바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그 말이 놓여 있는 전제와 맥락을 탐색하도록 돕는 질문을 건네는 것입니다.


질문을 통해 생각을 이끌어내려면 몇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평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대가 한 번 대답을 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 대답이 어떤 전제 위에서 나왔는지, 그 전제가 다른 상황에서도 유효한지 묻는 후속 질문을 던지면 생각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타인과의 대화뿐 아니라 자기 성찰에도 훌륭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거울 앞에서 “나는 왜 이걸 원하는가?”, “정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의 힘은 단지 대화 기술을 넘어 삶의 중요한 역량으로 이어집니다. 마이에우티케를 익히면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정보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는 비판적 사고력이 자랍니다. 자신의 가치와 욕망을 명확히 이해하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 성찰력도 생깁니다. 상대의 말을 부드럽게 이끌어내고 대화의 질을 높이는 소통 능력 또한 강화됩니다. 이런 능력은 빠르게 흐르는 정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문장을 단순한 가르침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왔습니다. 마치 산파가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도록 돕듯이, 그는 생각이 태어나도록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답이 없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래의 직업, 인간관계, 가치 선택, 윤리적 딜레마까지,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완벽한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일지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식 마이에우티케는 그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질문 하나하나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진짜 생각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낼 것입니다.


마이에우티케(μαϊευτική)는 ‘답을 주는 철학’이 아니라 ‘생각을 태어나게 하는 철학’입니다. 그대가 이 방법을 익힌다면, 세상의 말과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철학적 기술이며, 삶을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사유의 습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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