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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돌아온다 — 성철 큰스님 열반 드신 날(11월 4일)을 기려

by 이제월



1993년부터 11월 4일 달력에는 늘 “성철 큰스님 열반 드신 날”이라고 써 두었습니다.

올해는 ‘32번째’라는 것도 함께 적어 두었지요.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 머물던 성철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날은 그저 한 수행자의 생이 다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불교의 한 시대가 마감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수행자들이 황망해하며 해인사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다비식을 하는 동안에도, 그후에도 대종사가 떠나면 자기 깨달음을 누가 인가할 것이냐며, 그 상실의 각별함을 드러냈습니다. 혹자에게 그는 고타마 싯다르타 이후 가장 부처 자신이었던 이입니다. 그러나 스님의 삶과 가르침은 오히려 그날 이후 더욱 깊게 남아, 종교를 넘어 시대의 정신적 자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의 속가 이름은 이영주(李英柱)요, 퇴옹(退翁)이라는 호를 썼습니다. 뒷방 늙은이란 말이지요. 성철스님은 출가 전, 대구고보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셨습니다. 논리와 학문을 즐기던 청년이었지만, “세상 학문은 근본을 밝히지 못한다”는 깨달음으로 출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출가 후 스님은 “부처가 될 때까지 산문 밖을 나가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시고, 10년 동안 걸식도 말도 끊은 채 오로지 정진하셨습니다. 그 결기는 한국 불교의 도반들과 경북 문경에서 ‘봉암사 결사’를 하는데 이르렀습니다. 고려 적 지눌 대사의 정혜결사 이후 가장 크고 청정한 결사였을 것입니다. 성철과 그의 도반들은 한국 불교가 일본의 대처승제를 떠나 청정비구를 선언하고 육조 헤능이 일으킨 선의 전통을 직접 계승한다는 뜻에서 ‘조계종’을 이루었습니다. 조계종이 이름을 딴 조계산은 바로 육조 혜능이 깨달음은 얻고 편 곳입니다. 성철 이후 한국불교의 수행 풍토는 그야말로 새로워졌다 하겠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 오도송을 읊기 전 용맹정진하던 당시 자주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가 “공부하는 이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행의 태도를 넘어, 인간이 진리에 다가서는 자세를 상징합니다. 스님에게 ‘공부’는 기계적인 경전 암기가 아니라, 자신을 속이지 않는 철저한 성찰의 길이었습니다.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를 속이지 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성철 스님은 1967년에 해인사의 초대 방장이 되셨고, 1981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장 유명한 승려, 또는 ‘높은 자리’에 올려졌어도 속세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수행의 근본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백일법문』을 집필하시며 “깨달음 없는 교학은 죽은 공부요, 교학 없는 수행은 눈먼 수행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불교의 학문과 실천이 따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균형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당시 군부의 독재가 서슬 퍼렇고 천주교며 개신교가 시국선언을 하고 민주인사들과 연계해 세상의 정의를 외치던 때로 성철 스님도 종정으로서 산문(山門) 밖 세상을 향해 뭐라고든 일갈해야 한다고, 불교도 폼 나게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스님께서는 그럴수록 더 진리를 추구하고 전할 방도를 강구하는 데에 천착하였습니다.


그분의 가장 널리 알려진 말씀은 아마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일 터인데, 종정이 되어 처음 베푼 이 말씀은 사실 불교에서는 오래된 말이요, 빤해 보여 실망하는 이도 있었습니다만,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인 줄 모르는 이는 없으나 진정 아는 이는 드뭅니다. 거의 없다고 해야겠죠. 일부 사람들이 문득 깨달아 ‘아이쿠야,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구나!’ 외칩니다만, 이조차도 아직 하수(下手)입니다. 여기서 한 번 더 깨달아 더 높은 경지에 들면 이제 비로소 진짜로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보니, 스님은 이 경지를 전한 것입니다. 단순한 형이상학적 표현이 아니라, “분별심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지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셨다 하겠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구절은 결국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세계가 본래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깨달음을 주는 말씀인 겁니다.


성철 스님은 세상과의 거리를 두셨지만, 그 가르침은 오히려 세속의 삶을 깊이 관통했습니다. 그는 “진리는 말 속에 있지 않고 실천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보다 행이 앞서야 한다는 이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모든 직업과 역할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원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양자역학을 포함 최신 과학에도 정통하여 불교가 낡은 가르침이 아니라 실제 세상의 진짜 모습과 원리를 앞서 꿰뚫어 보았음을 드러내보이셨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스님께서는 당장에라도 다른 종교로 바꾸어 개종했을 것입니다. 생전 성철스님은 몇 번이나 당연하다는 듯 만일 다른 가르침이 더 수승(殊勝)*하면 당장에라도 갈아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불교 승려로 남은 건 스님 보시기에 여전히 불교의 가르침이 가장 수승하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열반에 드신 1993년은 한국 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변기를 지나,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물질적 성장이 정신적 공허를 낳고, 속도의 문화가 중심을 잃던 때였습니다. 그해 11월 4일의 열반은 많은 사람들에게 ‘깨어 있음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생전에 “이 몸이 죽어도 법은 죽지 않는다”라고 하시더니 새삼 사람들은 세상 이치를, 그리고 진리와 나 사이 관계를 환기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뒤 사람들은 급격하게 물질화의 길을 걸었고, 욕망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폭주’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IMF 즉, 구제금융사태로 이어지고, 어쩌면 지금의 정신적 방황에까지 이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용맹정진하던 그가, 모두가 믿고 자기 깨달음이 진짜인지 물을 수 있고 대거리할 수 있던 그이가 그립습니다.


성철 스님은 평생을 절제와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대중 앞에서의 설법보다, 침묵 그 자체로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의 법어집에는 “한 생각 일어나면 천 가지 망상이 따르고, 한 생각 멈추면 부처가 드러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 속에서 이 한 구절은 여전히 유효한 통찰로 읽힙니다.


스님의 삶은 단순히 종교적 모범을 넘어, 자기 확립의 본보기로 다가옵니다. 스님께서 “남의 가르침을 좇지 말고, 스스로의 눈으로 진리를 보라”고 하신 말씀은, 지금 이 시대의 남녀노소 모두에게 필요한 용기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호랑이가 출몰하는 산에서 홀로 정좌하고 온 방문을 활짝 열고 장좌불와(長坐不臥) — 눕지 않고 자지 않고 앉아서 계속 수행하기를 몇 년을 헤아린 그의 용맹과 호방함은 빠른 변화와 불확실한 길 위에서 쫄보가 된 우리, 어둑눈이 된 우리에게, ‘내면의 눈을 뜨는 사람’이 되라고 일러 주는 것 같습니다.


성철 스님은 열반 직전에도 한결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나의 일생은 오직 수행이었다”고 하셨다고 전해집니다. 그 삶의 태도는 화려하지 않았으나, 한 시대의 정신을 단단하게 세웠습니다.

스님의 임종게(臨終偈)는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생평기광남녀군, 미천죄업과수미) 즉, "나 평생 동안 수많은 남녀들을 속여왔고,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넘어섰네.”입니다. 죽기 전에 뉘우치고 무슨 숨겨온 죄를 고백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각자 자기 생각은 자기가 세워야 하고, 자기 마음은 자기가 지켜야 하기에 마치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기 전 “아무것도 설(說)한 바가 없다”고 하신 것처럼 자기를 디딤돌 삼을지언정, 갇히거나 가로막히지 말라고 이른 것입니다.


지금껏 제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1993년 11월 4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추모에 그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엇에 쓸모가 있겠습니까. 이 기억은 다시 실행하는 일입니다. 무엇을 실행하느냐 — 우리 안의 중심을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스님이 남기신 말씀을 새깁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지러운 세상을 탓하지 마십시다. 이웃을 탓하지도 맙시다. 원수를 탓하지도 맙시다. 그날의 열반은 끝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깨어 있음의 시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수승한 것에 올라타면 되지 기껏 욕하면서 우리가 깔보는 것들에 올라타고 거기에도 못 미쳐 갇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자리, 가장 좋은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마음을 고요히 두십시오. 이게 나의 싸움이요, 우리의 전쟁입니다.



*‘수승(殊勝)하다’는 말은 '아주 훌륭하다', '뛰어나다'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입니다. 이 말은 대승불교가 소승불교에 대해 스스로를 '큰 수레(大乘)'라고 명명한 것처럼, 특정 가르침이나 수행법이 다른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수행자나 공동체를 '수승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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