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먹지 말 것
사고에 금령(禁令)을 내릴 수 있다면, 한 가지
— 자기를 먹는 생각을 하지 마라 —
당뇨가 만연하면
그게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定常)일까요?
비상(非常, emergency)의 파도가 넘실 대는 것뿐이지 않나요?
해일이 날마다 모든 해안을 휩쓸어도 그건 정상이요,
괜찮다고 해야 할까요?
그것이 안 괜찮으니
괜찮은 데까지 우리 생활영역이 후퇴할 겁니다.
당뇨는 흔하든 심지어 전부가 걸리든
정상이 아니고 병증입니다.
치료를 요합니다.
치료가 가능하고, 필요합니다.
그것의 정상성 여부 판단은
남들은 어떤가, 얼마나 흔한가가 아니라
자체완결성, 순환하고 생성하는지, 스스로 잘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치료를 요하는 신호, 촉구, 심지어 몸의 명령을
조절의 실패를
흔하다는 이유, 그밖에 어떤 이유를 대서건 정당화해선 안 됩니다.
신체 기관과 운용의 파괴입니다.
파괴를 보통 그렇다, 정상이다 불러서야 되겠습니까.
스토킹을 사랑이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도파민 중독, 우울, 자기중심성.
이런 것들을 징후로 읽지 않는 건
저로서는 미세먼지, 오염된 물, 기후 열 격변을 정상이라고 읽는 것처럼
충격을 줍니다.
문제 풀기를 그치는 것도 이해합니다.
동의하지 않아도 이해는 합니다.
그렇게 그만두어도, 네,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애초 없다고 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받게 될 건 위로와 해설, 격려와 동조가 아니라
이것이 퍼포먼스인가 이벤트인가 처형인가 어리둥절하리만치
버럭버럭 꾸짖거나
떠나는 사람들일 겁니다.
결핍과 허기에 속박되고 탐닉하는
‘소비자’라는 현실의 ‘아귀’(餓鬼)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 정신은 우리 자신에 대한 조형자(造形者)요 형성자(形成者), 모피어스(Morpheus)입니다.
그대의 생각이 그대에게 모습을 줍니다.
아귀를 택하지 마세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아수라(阿修羅)요 지옥도라 할지라도
그대는 이 현실에서도 멀쩡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한 발 한 발 그렇게 나아가, 그대 자신이 순환하는 시스템, 자기 스스로 살아 있는 — 살아 있는 건 언제나 살아가는 것입니다! — <자기가 되어요>
Be yourself, 그러자면, Do yourself
But not monster.
괴물과 괴물 사냥꾼으로 만나지 말아요.
누구와도.
그러자면, 자기를 먹지 말아요.
자기에게 관심을 둘 것 없어요.
내가 안 챙겨도 나는 내 짐짝이 아니라 내 몸, 나 자신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나랑 붙어 있습니다, 그냥 나죠.
그러니까 밖을 보세요, 남들을 보세요.
바깥을 잘 정돈하고 보살피세요.
그러면 세상이 그대를 돌보고 보살핍니다.
이 세상을 먹어요.
자기를 빨아 먹지 말아요.
나무에게
바람이
休
+무럭무럭 자라기를. 내가 아닌 것들을 나로 받아들여 내가 자라나게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