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일흔한 번째날

그렇게 까다롭게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71

그렇게 까다롭게 굴거나 편파적으로 굴지 맙시다.

시인의 영혼이나 전갈의 꼬리나

모두 벅찬 기쁨으로 솟아오릅니다.

이 똑같은 지상에서.



원문⟫

Let us not be particular and sectional. The poet’s mind and the scorpion’s tail rise in glory from the same earth.



새로 한 번역⟫

외떨어뜨리고 쪼개어 나누어지지 마십시다

시인의 마음이건 전갈의 꼬리건

같은 지상에서 찬미하고 영광 받으며 드높아집니다




읽기글⟫

영원성은, 이를테면

우리의 등급을 메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벽을 한심스러워하고

허물려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출판된 본문과 달리 저는 ‘in glory’를 ‘찬미하고 영광 받으며’로 옮겼습니다.

glory는 흔히 알려진 대로 ‘영광’이라는 뜻과 영예, 은혜 등의 뜻을 갖지만, 찬미하고 감사하고 찬송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해서 이 말 안에서 두 가지는 분리할 수 없이 하나입니다. 영광이 곧 감사이고, 감사가 곧 영광입니다. 신의 영광은 인간에게 찬미받음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엮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찬미와 감사도 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은혜를 주고 아울러 그것이 인간의 영예입니다. 거래 관계가 아니라 DNA의 이중나선구조처럼 반드시 한 쌍을 이룹니다. 지역과 시대가 달라지면서 이러한 문화 차이가 간과되는 것은 아쉽습니다. 이것은 딱히 언어학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전을 찬찬히 읽어 봐도 ‘두 개의 뜻’이 아니라 ‘두 개의 번역어’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예문들이 두 번역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주니까요. 그러나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지브란의 나라 레바논이건 그가 쓴 언어 영어의 나라와 영어가 뿌리를 둔 라틴-아리아 계열의 여러 문화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읽으면 곧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와 한쪽으로 쏠리는 건 우리 시대가 그만큼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나 고유한 쏠림이 있지만, 오늘날은 교통과 통신, 번역과 공유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이런 쏠림이 더욱 크고 단단합니다. 참된 근거는 사라진 채 서로 비슷하게 확인해 줌으로써 점점 자기 확신이 강화되지만, 뿌리 없이 물을 떠다니는 부초를 안심하고 붙드는 격입니다.

mind라는 단어도 라틴 어 mens에서 기원하였는 바, 정신-영혼-마음 등으로 굳이 나눌 것 없이 그저 한 마디 말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문맥을 헤아려 어느 한쪽으로 극단화한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옛 문헌을 현대어로 옮길 때만 아니라 현대의 작가들이 현대 작품을 창작할 때에도 여러 갈래의 의미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일흔 번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