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일흔두 번째날

한 그루의 나무는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72

한 그루의 나무는 대지가 하늘에 쓰는

한 편의 詩.

우리는 우리의 공허를 기록하기 위해

그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듭니다.


원문⟫

Trees are poems that the earth writes upon the sky. We fell them down and turn them into paper that we may record our emptiness.




새로 한 번역⟫

나무들, 땅이 하늘 아래 쓰는 시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거꾸러뜨리고

종이로 바꾸며

아마도 우리의 허무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읽기글⟫

이 유한한 작업의 소용(所用)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먼저 이 아포리즘이 우리의 절대적 허무를 가리킨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대지가 나무라는 한 줄 한 줄의 시어(詩語)를 낳는 데 들이는 시간과 수고를 생각하십시오.

그에 비해 우리가 그것을 쓰러뜨리고 새삼 일으키는 것들, 일으키려는 것들은

얼마나 무상(無常)한가, 덧없는가를 생각하십시오.

이 상대적 허무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칼릴은 이것을 묻고 있습니다.

결코 그가 우리와 우리가 하는 일들이 무가치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가 그토록 온 정성을 다해 생애를 바쳐 글을 쓰고 전하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그가 무가치함을 알고도 고집할 만큼 완고하고 비겁한 영혼이었던 것일까요?

나는 허무를 보고도 그 안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믿음은 과거의 탐색이 아니라

이제 용기 내어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시를 베어 먹는 만큼

우리는 공허를 넘어선 형상을 빚어낼 수 있겠습니까?

릴케의 [[형상시집]]처럼

우리는 오롯한 하나의 물상(物象)을 맺을 수 있습니까?

침묵을 풀려거든

하나의 실재를 결정(結晶)한 뒤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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