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를 견디기 힘든/힘들거라-걱정하는 이들을 위한 예고
<더 테러 라이브>(2013)의 감독과 <전지적 독자 시점>(2025)의 감독은 동일인입니다.
김병우 감독의 작품에 대해서 사람들은 열광과 비난 양극을 오갔습니다. 이렇게 냉온탕을 오가는 감독은 한국에는 좀체 없는 것 같아요. 이건 황선홍이나 이동국 같은 스트라이커가 이른바 똥볼을 차대며 온국민을 들끓게 한 장면을 떠올려줍니다. 이런 감독의 영화를 보는 건 조금 강심장을 필요로 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괴담인 거죠. “요리사가 자기가 무슨 요리 하는지를 몰라” 하는 말을 들은 것 같은. 그래도 이 영화를 먹은 건 주연을 맡은 배우가 김다미여서입니다. <마녀>(박훈정 감독, 2018년작)에서부터 <소울메이트>, <이태원 클라쓰>, <그해 우리는> 등에 이르기까지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 다작 배우는 아니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만족스런 감상을 남겼습니다. 제법 호불호가 갈린 <나인 퍼즐>에서의 연기도 저는 좋았습니다. 가능한 연기, 매력적인 연기로 작품을 설득시켰습니다.
12월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김병우 감독의 신작이며 대작 <대홍수>는 공개된 직후부터 갖은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공개 당일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늦은 밤 버스 안에서 매우 만족스럽게 감상한 저는 집에 돌아와서도 씻자 마자 못 다 본 부분을 마저 보았고 몇 가지 걸리기는 했지만, 좋은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좋다, 한 번 보라 권유하고 출근하는 길에서부터 영화에 대한 공격 기사가 가득한 뉴스 화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도 ‘대홍수’라고 치면 험악한 제목으로 실망과 비난이 넘실거려 도대체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예술이 학문이 아니니까 시비 우열이 분명하지 않고 ‘취향’에 따라 심지어는 각자의 철학에 기반해 작품 평가는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쁘게 며칠을 지나고 오늘 아침 혹평들을 찾아보면서 예고된 당혹감을 마주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좋게 보건 나쁘게 보건 다 놀랄 게 없는데, 나쁘게 본 평들의 이유가 저를 놀래켰습니다.
이 영화가 어렵다고?
이 영화가 불친절했다고?
이 영화가 관람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헷갈리게 했다고?
<대홍수>의 실패 원인, 혹은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평하는 가운데서도 영화가 너무 쉽게, 너무 빤하게 다 보여줬다는 비판이 아니라 관객을 ‘어렵게’ 했다, ‘힘들게’ 했다는 비판을 하는 평등을 여럿 접하니 가슴이 두근댑니다. 왜냐고요? 이건 영화의 실패가 아니라 ‘문해력’의 실패니까요.
이 정도 플롯과 복선, 단서를 따라가지 못하다니. 너무 처음부터 훤히 보여서 그런 스릴이 없는 게 아쉬웠는데. 하지만 부모의 마음으로 볼 때 감정적 버거움을 이렇게 다 티내고 해 준 덕분에 덜 수 있었고, 그래서 이런 측면에선 대중적으로 바른 선택이었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감독이 정말로 실패한 건 대중의 낮은 문해력과의 소통 실패였단 걸 알았습니다. 대중의 지나친 고객혼(顧客魂), 너네가 알아서 다 맞춰라 하는 완벽한 소비자 정신(customer spirit)! 도대체 계산 불가능하고 실시간 유동(流動, liquid)하는 목표점을 대체 어떻게 찍을 것인가, 맞출 것인가! 그 결과 한국인의 잠재 문해력이야 더 높을 테지만, 모니터를 켜면서 오늘 쓰기로 마음 먹은, 이만큼만 뇌를 써야지~ 하는 선, <할당 문해력>(이런 용어 없지만 제가 맥락을 부과해 붙인 이름입니다)은 초과해 버린 것이지요.
반면 다른 외국인들께오서는 와, 한국영화다! 대작 느낌인데? 내가 기꺼이 이 정도 전두엽은 할당해 주지, 오, 뭘까 뭘까, 두근두근…….
예, 대참사의 원인은 영화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포영화는 공포영화 느낌으로 보고, 액션영화는 액션영화 모드로 관람하고, 코미디는 코미디로 즐겨야지요.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만, 딱 <지구를 지켜라!>라 떠올랐습니다. 현상은 꼭 그렇게 보입니다. 다만, 같은 수준에서 모드 설정의 차이, ‘옆으로의 다름’이 아니라 문해력이라는 ‘높낮이의 차이’가 원인이라면, 게다가 설마 하는 마음이 쥐어짠 <할당문해력> 차이가 아니라 진짜 다 쥐어짠 <문해력>이 이런 거라면. 숏폼 콘텐츠가 그렇다고 정말 뇌를 썩게 하지 않는다지만, 물리적 뇌손상은 아니라도 ‘얼이썩다’로서의 어리석게 만든 건 분명하다고 혐의를 씌우고 싶어집니다.
<대홍수>는 어렵지 않고, 너무 쉬워서 김이 빠집니다. 그러나 덕분에 감정적으로 너무 버거워하지 않고 연말 연시 휴가 느낌 속에 집에서 대충 쿠션 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양갈래 평에 볼까 말까 마음 버거운 분들은, 그냥 무슨 영환지 궁금해하는, 뭔지 모른다고 열린 마음으로 보면 충분히 즐기고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고, 용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추천합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