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진 스타일에 대한 생각

by Aintnobite

패션이 점차 '재산'의 가치를 가지려 하고 있다. 옷이나 가방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투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제품의 가치를 생산자(디자이너)가 정하고 소비자는 그 미학에 동의하며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이 가치를 정한다.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큐레이션을 보여주던 센스(SSENSE)나 매치스패션 같은 전통적인 편집숍들이 경영난을 겪고 무너지는 반면, 중고 거래나 리셀 시장은 역설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더 저렴한 것을 찾거나, 혹은 '다시 팔 수 있는' 합리성을 찾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 속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들어 내 스타일이 점점 단조로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옷을 입을때 나는 어딘가 지루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어느새 패션을 순수한 '좋음(Good)'이 아닌, 남들보다 혹은 어제보다 '더 나음(Better)'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작년 초, '올드머니' 트렌드가 부상했을 때 나는 그 지루함을 비판하는 짧은 생각을 적었다. 하지만 내심 '더 로우(The Row)'의 마고백은 갖고 싶다는 모순을 품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렉산더 맥퀸의 파격이나 릭 오웬스의 구조적인 미학을 동경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후르츠패밀리' 같은 리셀 플랫폼에서 키워드 알림을 설정해 둔 브랜드는 크리스타세야, 더 로우, 셀린느 같은 '방어율 좋은' 브랜드들이었고, 작년 가장 많이 구매하고자 했던 것도 더 로우나 그런 부류의 스타일 였던것.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씁쓸한 아이러니였다. 패션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비를 통해 얻게 될 '교환가치'를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20대 때, 남들의 시선보다는 아방가르드한 패션을 겁 없이 즐기던 시절이 내 취향의 전성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옷이 자산이 될 거란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떤 옷을 구매하던 평생 입어야지라는 생각, 현재의 스타일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저 입는 행위가 즐거웠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 "여유가 없으니 가장 좋은 것을 산다"는 핑계로 합리성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패션을 나의 감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마르크스는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 때, 소비자는 제품을 '사용가치(그 물건이 주는 즐거움)'가 아닌 '교환가치(얼마에 팔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물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보다 "이걸 나중에 얼마에 팔 수 있을까?"를 먼저 계산한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구매한다"가 아닌 "받는다"라고 표현하는 현상, 크롬하츠가 중고 시장의 가격 방어 덕분에 더 인기를 얻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높은 매출과 리셀가를 기록하는 브랜드는 다시 트렌드가 되고, 그 트렌드는 리셀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한다. 반면 자산으로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브랜드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결국 우리는 다양성을 잃게 된다. 자산 가치가 높은 소수의 브랜드만 살아남는 시장 불균형은 결국 우리의 옷장을 획일화시키고, 패션을 지루하게 만든다.

내가 패션에서 진정으로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타인의 동경이 담긴 시선이었을까, 아니면 내 감각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한 즐거움이었을까. 취향이 반영된 미학이 아니라, 마케팅으로 범벅된 교환가치에 매력을 느낀다면 앞으로 나는 더 지루한 패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트렌드를 완전히 외면할 수도, 트렌드가 좋아 보이지 않을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을 맹목적으로 좇다 보니 나 자신이 지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패션이 자산이 아니기를 바란다. 구매 이전에 자산 가치를 먼저 따지는 행위는 부동산 임장이나 주식 투자처럼 건조하다. 패션만큼은 계산기가 아니라 감각의 영역에 남겨두고 싶다. 궁극적으로 나는 이 생각을 계속 해내고 싶다. 인정받기 위한 패션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한 패션으로 돌아가겠다고. '더 나은(Better)' 선택을 하기 위해 눈치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좋은(Good)' 것을 선택하는 안정을 갖겠다고.

제품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이 상승하여 그 자체가 자산이 되는 삶.

그것이 지루해진 내 패션과 일상을 다시 즐거움으로 채우는 철학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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