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우주가 완성되는 데 필요한 시간에 대한 생각
하나의 스타일이 '완성'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샤넬은 여성에게서 코르셋을 벗기는 데 평생을 바쳤고, 이브 생 로랑은 40년에 걸쳐 여성에게 수트를 입혔습니다. 대부분이 보통 위대한 스타일이 탄생하려면 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 그 믿음을 배반하는 예외가 있습니다. 단 3년. 커트 코베인이 세상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이 짧은 시간은, 하나의 장르가 탄생하고 완성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요?
아니면 미완의 신화로 남았기에 우리가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일까요?
엄밀히 말해 커트 코베인은 그런지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춥고 가난한 시애틀에서, 자신의 우울과 결핍을 겹쳐 입었을 뿐입니다. 그에게 그것은 패션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이자, 어쩌면 생존 그 자체였을 것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런지라는 장르는 누가 만들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상업주의 시스템일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와 패션 자본은 한 개인의 사적이고 내밀한 옷차림에서 돈이 되는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런웨이로 끌어올려 그런지 룩이라는 이름을 붙여 상품화했죠. 즉, 개인은 스타일을 입었고, 자본은 그것을 장르로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기억하는 그런지 룩은, 가장 안티패션적인 한 인간을 가장 패션적으로 포장해 낸 자본주의의 승리이자, 슬픈 역설일지 모릅니다.
몇 몇은 흔히 그가 요절했기에 그의 스타일이 더 발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비틀어보겠습니다. 만약 그 3년이,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진하고 스타일을 완성하기에 이미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면?
커트 코베인의 스타일은 등장과 동시에 완성형이었습니다. 더 찢을 곳도, 더 더럽힐 곳도, 더 무심해질 곳도 없었습니다. 그는 내면의 우울, 분노, 허무와 외면의 형식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지를 단기간에 보여주었습니다. 그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그 어떤 디자이너도 커트 코베인의 오리지널리티를 뛰어넘는 새로운 그런지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후대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원형이 너무나 완벽한 밀도로 완성되었기에, 더 이상의 진화가 불가능한 포화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난 30년의 그런지 룩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원을 네모로 바꿀 수 없듯이, 이미 완결성을 획득한 스타일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반복되고 변주될 뿐이죠. 그는 3년이라는 시간을 30년의 밀도로 압축해서 살았고, 그 짧은 시간 안에 패션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을 보여주고 떠났습니다.
저는 종종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유예하곤 합니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을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채우는 삶의 밀도와 진정성일 수도 있겠구나, 라고 말입니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장르가 되어버린 3년의 기록. 어쩌면 진정한 스타일이란 노력해서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치열하게 존재함으로써 남겨지는 흔적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일까, 그런지에 대해선 아직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질문 하나가 여전히 맴돕니다. 모두가 말하는 그런지 룩이라는 것은 정말 하나의 독립된 패션 장르일까요? 아니면 그저 30년째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커트 코베인 코스프레에 불과한 것일까요?
다른 장르들이 수많은 천재들에 의해 진화하고 변형되어 온 것과 달리, 그런지는 30년 전 그 남자가 입었던 착장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플란넬 셔츠, 찢어진 청바지, 헝클어진 머리. 2025년의 트렌드를 말하는 런웨이조차 여전히 1990년대의 그를 복제하고 있습니다.
이 기이한 정체는 어쩌면 그런지가 더 이상 손댈 곳 없는 완전한 스타일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 명의 천재가 드리운 너무나 거대한 그늘이 후대의 상상력을 말려 죽인 비극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떠난 지 30여 년, 우리는 여전히 커트 코베인이라는 유령과 함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연 스타일인가요, 아니면 끝나지 않는 추모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