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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May 20. 2022

박찬욱 단편 <심판(1999)>

박찬욱 단편 <심판> (1999)


박찬욱 영화를 본 후에 남는 특유의 찝찝함

그가 다룬 소재와 그 속의 해학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유려한 미장셴과 자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스타일 체계에서 기인한다.


1. 줄거리와 감독의 메시지


줄거리


어느 병원의 영안실에 백화점 붕괴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20대 여성의 시신이 안치된다. 죽은 여자가 본인의 딸이라 주장하는 한 쌍의 부부와 장의사. 사고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취재 중인 기자는 죽은 여자의 신원을 밝혀 누구의 딸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부부와 장의사의 주장에 따르면 죽은 여자가 각자의 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은 동일하게 존재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부부의 딸이라 주장하는 한 여자가 등장하며 이 모든 사건이 보상금을 노린 사기극이었음이 밝혀진 찰나에 지진이 발생하며 죽은 여성이 장의사의 딸이었음이 암묵적으로 밝혀지게 된다. 지진으로 인해 물바다가 되어버린 바닥에 전구가 떨어져 깨지며 장의사를 제외한 영안실 내의 모든 사람들이 감전사고를 당한다.



감독의 메시지


<심판>에서 박찬욱 감독은 특유의 풍자와 시니컬한 유머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탐욕, 나약함과 사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영화에서 다룬 가족과 복수, 폭력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는 이후의 작품에서도 꾸준히 소재로 사용된다.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을 비롯한 복수 3부작과 <박쥐>, <아가씨> 등 각각의 바리에이션은 조금씩 있지만,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와 미장셴은 비슷한 결을 가진다. <심판>은 그 시초로서 박찬욱 감독 영화의 내러티브 체계와 스타일 체계가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응축된 영화다. 인간의 탐욕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사이사이 해학적 요소들을 집어넣어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감상자들은 누군가의 몰락과 파멸을 관조하는가 싶지만, 파멸의 과정 속에서 보이는 아이러니한 유머들을 통해 허구인 스크린 속의 상황을 순식간에 현실로서 맞닥뜨리게 된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치졸하고 비열한 사람들은, 너도 다를바 없어 똑같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이야! 라고 말하는 듯하다.


박찬욱 영화를  후에 남는 특유의 찝찝함은

그가 다룬 소재와  속의 해학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그리고 거기에 유려한 미장셴과 자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스타일 체계에서 기인한다.


단편영화 <심판>(1999)에서 그의 블랙코미디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지는지 두 방향으로 설명하려한다. 

영화의 내러티브 체계 속에 소재와 플롯 구성, 제유적 요소들을 분석을 해보겠다. 그 후, 스타일 체계를 분석한다. 촬영기법과 색감, 편집방식과 조명, 사운드 등 미장센에 해당되는 요소들을 자세히 분석해보고자 한다.



2. 분석박찬욱식 블랙코미디


1) 내러티브 체계

제유적 방식으로 인간의 욕망과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

   

소재

-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과 사건

영화 초반에 VHS 영상으로 1980-90년대 한국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지진 등의 천재지변, 사이비 종교의 부흥집회 등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상황들과 재해와 재난을 보여준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연상되는 ‘플러스 백화점’ 붕괴사건의 피해자의 신원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된다. 감독의 이후 작품들과는 다르게 <심판>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을 다뤘는데, 백화점의 붕괴사건도 결국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한 재난 사고다.


가족 찾기

영화 내내 죽은 여성이 누구의 딸인지 부부와 장의사는 본인의 딸이라는 증거를 대며 시신에서 이 증거를 찾으려한다. 후에 부부의 딸이라 주장하는 새로운 여성이 등장하며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솔로몬의 심판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심판>이라는 제목처럼, 영화 초반에는 이들의 심판자가 영안실에 있는 기자와 사건을 담당한 공무원인 듯 하지만, 심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반부의 지진 즉, 신이자 자연으로 상징되는 초월적 존재가 이들에게 심판을 내리며 끝없는 욕망으로 이익을 탐한 이기적인 인간들을 처단한다. 


플롯

영화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누가 죽은 여성의 부모인가? 이다. 

(발단) 장의사와 부부 모두 본인의 딸이라는 증거를 대는 와중에 기자가 질문을 한다. 가출한 본인의 딸이 죽은 여성임을 왜 바라는가? 이 한 마디 질문에 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전개) 이는 보상금 리베이트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게된다. 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부부와 장의사는 서로 증거를 대가며 죽은 여성이 본인의 딸임을 밝혀내고자 한다.

(위기) 부부의 딸이라 주장하는 여성이 등장하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여성은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며 부부의 딸이라 주장한다.

(절정) 영안실 내 사람들의 고성과 폭력을 동반한 다툼이 오가고 이 다툼이 극에 달한다. 여성이 발작을 일으키게 되며 지진이 발생한다.

(결말) 지진으로 물바다가 된 바닥에 전구가 떨어져 감전사고가 발생하며 장의사만이 살아남는다. 


아이러니 속 해학적 요소와 인간 군상을 통해 보여주는 부조리한 현실

감독은 인간의 본질과 탐욕이 좁은 영안실 안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풍자한다.   

가출한 본인의 딸이 살아있길 바라지 않고 시신이 딸이라 주장하는 부부와 장의사

 : 부모라는 보편적 정서를 느낄 수 없다. 보상금 때문이라면 돈이라는 금전적 욕구에 눈이 먼 사람들이다.   

DNA 검사 요구를 거부하고 일을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는 사건 담당 공무원

 : 사건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고, 영화 초반에 누구의 딸인지 심판을 하려는 것같은 행동을 취하다 

   정작 결정적 증거를 수집하고자 장의사가 요구할 때 거부한다.   

특종을 잡는 데에 혈안이 된 취재 기자

 : 마찬가지로 심판자와 같은 행동을 취하다 본인의 출세를 위하여 고인에 대한 한 점의 예의 없이 

   무례한 언행과 행동을 한다.


아이러니 속 해학이 절정에 달할 때는 얼굴이 훼손되어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는 시신에 부모라고 우기는 장의사와 남자가 서로 얼굴을 대보며 “닮지 않았냐”라고 우기는 장면이다. 또한 결정적 증거가 될 다리의 흉터를 다리가 잘렸다는 설정을 통해 근본적으로 없애버리는 코미디로 풀어낸다.


제유적 요소

이산가족 상봉 VHS 영상

화면 속에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담긴 VHS 영상이 보여진 후에 영안실 안으로 부부의 딸이라 주장하는 오래전 가출했던 여성이 등장하게 된다.


물의 상징성

영화 내내 물이 자주 카메라에 잡힌다. 지진을 전조하듯 물컵의 흔들리는 물, 시신의 가슴을 만지는 기자를 남자가 때리는 장면 직전에서 잡히는 떨어지는 수도꼭지의 물, 지진으로 인해 바닥이 물바다가 된 장면 등 심판과 처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물은 이후 박찬욱 영화의 중요한 상징이 되는데, <박쥐>에서 등장하는 호수와 물 같은 침대, <복수는 나의 것>의 강가에서 발목이 잘리는 장면, <올드보이>의 우진 집 속 수로 등 주로 사건이 절정에 달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때, 그리고 처단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걸 감안하면 그의 초기작인 <심판>에서도 물이 이러한 처단의 상징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진계와 뇌파

지진계에 그어진 선들은 마치 중환자실 환자의 뇌파 측정 기계 속 뇌파를 연상하게 한다. 부부의 딸이라 주장하는 여성의 간잘 발작이 심해질 때 지진이 발생하고, 극에 달한 순간 죽은 여성의 시신이 눈을 뜨며 심판이 이르니 본인은 마침내 평온을 찾았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2) 스타일 체계: 제한된 공간에서 자극적인 요소들의 집합

<심판>은 영안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내용이 전개되지만, 

자극적인 영화 문법들의 조화가 마치 긴 장편의 스케일이 큰 영화처럼 

긴장감을 유발하여 풍자적인 내용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1. 촬영기법

익스트림 클로즈업

죽은 여성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장의사가 옷을 입는 장면에서 하품을 하는데, 이 때 벌린 입을 클로즈업한다. 비극적인 사고로 죽은 피해자의 장례 또한 장의사에게는 반복되는 업무니 지루하게 느껴지는 듯한 아이러니가 느껴지는데, 후에 이 시신이 장의사의 딸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하여 보면 이또한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프리즈 프레임

영화 초반 장의사가 옷을 입는 장면에서 하품을 하는데, 이 때 입이 클로즈업되면서 화면이 멈춘다. 벌린 입 속에 영화의 제목인 <심판> 이 배치된다.

지진이 일어난 후 탁자 아래로 몸을 숨겼던 기자가 나오려는 순간 전구를 쳐서 떨어져 깨지는 장면에서 깨지는 순간 화면이 정지된다. 프리즈 프레임 기법이 사용되어 전구가 땅에 떨어진 후 감전되어 일어서 있던 장의사를 제외한 전부가 죽는 순간, 제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 찰나를 강조한다.


CCTV 샷

영화 속 인물들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구도가 많이 보인다. 마치 초월적 존재가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을 지켜보며 심판의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듯한 전지적 구도로서 CCTV 샷이 자주 잡힌다.   


제시적 블로킹

부부와 장의사, 기자와 공무원이 서로를 헐뜯고 싸울 때 배우들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마치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 또한 영안실에 있는 인물 중 하나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두가 감전되어 죽은 마지막 장면, 살아남은 장의사는 CCTV 구도에 있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심판자를 바라보는 듯하다.


색감

흑백 > 컬러의 전환   

영화의 대부분은 흑백으로 진행되며, 이는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을 덮고 있는 하얀 천과 장의사의 옷, 그리고 검은 복장의 사람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대비한다. 또한 어설프고 사실적이지 않은 시신의 더미를 흑백으로만 보여주어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영리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지진 이후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 영화는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다. 마치 긴박한 상황에서 원색적인 인간의 본능이 나온 것을 상징하듯, ‘심판’이라는 제목과 어울리는 이 상황에서 붉은 바닥과 파란 쓰레기통 등 원색적인 색감은 더욱 상황을 극적으로 만든다. 피를 연상시키는 듯한 붉은 바닥 위에 감전된 사람들은 죽어 쓰러지고, 영안실의 한 가운데에는 쓰레기통이 놓여있다. 불순한 욕망의 찌꺼기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편집방식

점프컷의 반복

배경은 고정되어 있지만, 공간 속 연기자의 동작들이 시간을 뛰어넘는 편집방식으로 영안실이라는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죽은 여자가 본인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와중에 여러 인물들이 이러한 갈등 속에 지체되는 시간을 보내는 지루한 느낌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VHS 영상 삽입

영화 내내 기자가 촬영한 실제 재난, 재해, 사건사고의 영상이 삽입된다. 이 영상들의 조화는 영화가 사회를 냉소적으로 보고 있으며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인한 심판의 결말을 예언하는 듯 하다.


조명

영안실 내부의 조명 > 지진으로 인해 암전 > 다시 환해지며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   

영화의 결말에 더욱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장치는 조명이다. 지진으로 인해 암전이 된 후, 다시 조명이 켜지며 각자의 딸을 안고 있는 장면이 비춰진다. 마치 극장에서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으로서 진실을 드러내고 심판의 결과를 비추는 듯하다.



사운드

클래식 풍의 피아노 연주곡 삽입

VHS 영상이 보여질 때, 시신을 운반하는 장면을 보도하는 영상 속 소리 대신 들리는 클래식풍의 곡은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죽은 자의 진혼곡 처럼 느껴지는데, 이는 영화의 마지막 제시적 블로킹 기법이 사용된 장면에서 다시 삽입된다. 살아남은 장의사가 카메라를 쳐다볼 때 흐르는 클래식 곡은 마치 욕망으로 인해 심판받아 죽은 다른 사람들을 VHS 영상 속 시신들을 연상케 한다.


해학적인 상황 속에서도 클래식 곡이 삽입된다. 시신 옆에 부모와 장의사가 각자의 얼굴을 대며 닮았다고 주장하는 장면과, 죽은 여자가 본인의 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인 다리의 흉터가 종아리가 잘려 확인할 수 없게 된 장면에서 또한 클래식 곡이 삽입되며 해학적 상황 속 고상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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