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마음 그대로 두기

by 무언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마음이 이상했다. 어떤 마음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냥 이상했다. 울렁거리기도 했고, 약간 울 것 같기도 했지만, 엄청나게 후련하지도 않았다. 시험은 떨어졌다. 역시 "나는 운을 믿는 쪽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했다. 별자리 운세 따위 나에게 유효한 건 아니었나 보다. 무언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아주 작은 끄나풀을 잡고 있는 것이지만 그마저도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이제 이것조차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더욱이 몰려오는 불안은 약간의 우울감을 동반했다.

한 해가 또 가버린다. 나는 무엇을 했나.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남들과의 비교는 정신병을 가속시키는 원인이라지만, 잠을 자야만 하는 것처럼 어찌 보면 당연한 행위였다. 같이 수업을 듣던 동기들도 누군가는 벌써 취업을 하고, 누군가는 학교라는 펜스에 들어가고, 뭔가를 보호받는 일상이 부럽기만 하다. 애초에 혼자였지만,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된 기분이다. 내가 재취업을 잘할 수 있을까? 그동안 회피해 오던 나의 밑천을 주워가야 할 앞으로가 막막하다.

아, 너무나도 차가운 연말이다. 나에게도 봄이 올 것인가. 비염과 알레르기 따위로 점철된 봄이라도 올 것인가.


울음이 조금 난다. 인공눈물 한두 방울을 넣은 듯이 눈이 촉촉해진다. 하지만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달라지는 것도 없다. 내가 행동해야 일이 일어나고, 일이 일어나야 내가 바뀐다. 나도 안다. 알지만 두렵다. 이력서에 쓸 거리도, 자기소개서에 쓸 만한 소설 거리도 없어 보인다. 모두 이렇게 자기 능력을 과장하며 쓰는 건가? 나의 이전 경력을 살려서 작성해 보려고 하지만 모든 게 허풍 같다. 그만큼 잘하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잘한다고 하는 게 맞나? 나는 어디까지가 거짓으로 살고, 어디까지가 진실 되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들 진짜를 원하면서 가짜로 구는 건 어느 정도가 허용되는지 잘 모르겠다.


선생님이 내게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로 갈래?"라고 물었다.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그건 지금의 삶에 만족해서도 아니고 예전의 삶이 더 좋아서도 아니었다. 지금의 '나'를 알아가는 데에 썼던 시간들이 너무도 괴로웠고 우울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내년이면 20대 끝자락이 되지만 나는 나를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사랑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 무엇도 확답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만큼,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큼 나를 아는 데에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그저 현재를 사는 것도 과거를 반추하는 나와의 싸움이므로.

그 생활에 지쳤다. 결국 인생은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평생 염세주의자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라는 걸 완전히 인정하고 나서야, 씁쓸한 미소 같은 한 마디를 내게 건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이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괴로웠던 어린 나를 놓아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살아야지"에서 그치는 게 아닌, "그래도 살아보는 게 어떠한지"로 향하는 길을 찾는 중이다.

올해는 울지 않고서는 넘길 수 없는 해였다. 어쩌면 울어야 해결되는 것도 있었다. 나는 매일을 참았다. 참으면 사라지는 줄 알았다. 실은 그게 아니라, 내 심장에 썩은 물을 대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자랄 수가 없었던 거다. 울어서 사라지는 것이 있고, 써야 사라지는 것이 있고, 내뱉어야 사라지는 것도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걸 행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가 있었다.


나는 강해 보이고 싶었다.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래야만 내가 멋있어 보이는 건가, 아님 혼자서도 잘 사는 인간처럼 보이고 싶은 건가.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이고 지고 사는 삶을 좋아하는 건가. 그래야만 쓸모의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렇다면 아직도 나는 이 쓸모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부품처럼 굴리는 직장에서 있다 종국에는 구역질이 났어도, 한 편으로는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이었던 거다.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일을 나서고 떠맡아야 해소가 되는 종자인 건가. 너는 어째서 이것이 강하다는 방증이 된 거니?

나의 장점이자 단점. 그래서 앞으로의 나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인생이 모르는 것투성이다. 내겐 조언해 준 사람도 조언해 줄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조언을 해 줬으면 해 줬지. 어쩌면 이 행위로 또 쓸모를 느끼는 거다. 나는 지금의 나를 조금 안다. 쓸모가 보이지 않는 삶을 맞이해야 해서 그게 무서운 거다. 그걸 깨부수려면 강력한 힘과 약간의 피 묻은 상흔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꼴을 보기가 싫은 거다. 하지만 그 짓거리를 해야 다시 산다는 것도 안다. 나는 아는 게 너무 많아서 생각이 많다. 그 생각들이 나의 뇌를 잡아먹고 심장을 갉아먹고 살고 있다. 그래서 감정보다 더 빨리 리필되는 생각들을 먹어 치우든, 쓰레기통에 버리든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나는 생각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불안한 생각들. 나를 떠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