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아름다움의 구원

진정한 미에 대한 담론

by 녹턴

별점: ★★★★

추천대상: 미학을 좋아한다면/ 소비문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면

쓰는 단어가 추상적이어서 어려울 때가 있긴 했지만, 어찌저찌 잘 읽었다.


KakaoTalk_20251229_145005708.jpg
KakaoTalk_20251229_145005708_01.jpg



미학은 철학 못지않게 내가 궁금해하던 학문이다.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을 모아보면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칭성을 가지고 있고, 비례가 조화롭다. 하지만 대칭과 비례를 만족한다고 해서 모든 대상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훨씬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준이 대상의 미를 결정한다. 언뜻 보면 절대적인 것 같으면서도 상대적인 미의 이중성이 내 흥미를 더 자극했다.


동시대의 아름다움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정교해졌다. 시술, 화장, 보정과 같은 기술로 화면 속에 보이는 인물의 모습은 옥에 티 하나 없이 말끔하다. 화면의 조각조각을 전부 뜯어볼 수 있는 지금, 보는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가공되고 다듬어진 수많은 사진들이 sns 속을 떠다닌다.

타자의 부정성이 완벽히 제거된 이미지들. 이 이미지에는 긍정성만 존재한다. 우리는 완벽한 이미지를 ‘소비’한다. 소비는 대가를 주고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재화 혹은 서비스인 셈이다.

글쓴이는 이렇게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끝나는 것은 미가 아니라고 말한다. 소비와 미는 서로 상충되어 있는 대상이다. 미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지 않으며 주체로서 가만히 존재할 뿐이다.

미에 대한 헤겔의 미학은 진리와 자유의 미학이며, 이 미학은 미를 일체의 소비로부터 분리시킨다. “진리”도 “개념”도 소비되지 않는다. 미는 자기목적이다. 미의 광휘는 자기 자신을, 자신의 내적 필연성을 위한 것이다. 미는 어떤 외적 목적에도, 어떠한 외적 사용관계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84p)

미는 소비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이 미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풀잎을 바라볼 때나, 유독 친구의 얼굴이 예뻐보일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런 건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보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느낀 것이다.



또한 글쓴이는 미는 감성이 아닌 이성이라고 주장하며, 역사로부터 미의 개념을 가져온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미는 도덕과 개성을 표현할 때만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개성의 미가 섹시함에 밀려나도 있다. “19세기에는 중산층 여성들이 섹스어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때 매력적이라고 여겨졌다. 아름다움은 육체적이자 정신적인 속성으로 이해되었다. (…) 성적인 매력 그 자체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 기준은 미뿐만 아니라 도덕적 개성과도 분리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성과 심리적인 특성들을 궁극적으로 섹시함에 종속시킨다. (73-74p)

진선미(眞善美)의 개념처럼, 오랫동안 미는 진리(진)와 의지(선) 다음으로 중요한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미'가 진선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에 따르면(김종갑, 2019, p.160) 현대의 대도시에서는 표면만이 부유하고 있다. 표면 아래에 깊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익명적인 타자에 둘러싸여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타자의 인격이나 성격을 알 수가 없다. 눈으로 보이는 외모가 경험의 전부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때 외모지상주의는 현대인의 내면화된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5)라고 할 수 있다.

위의 말처럼, 한 사람의 내면을 깊게 알 여건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의모를 중시하는 풍조가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소비-객체-완벽함-긍정성-우아함-편안-매끄러움-디지털미-순간

미-주체-불완전함-부정성도 포용-숭고함-고통-울퉁불퉁함-자연미-영원

책을 쭉 읽어보면 이렇게 대립쌍을 만들어볼 수 있다.


가짜 아름다움이 만연한 지금, 이 책이 하는 주장은 아주 귀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란츠 카프카-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