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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소송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죄목

by 녹턴

별점: ★★★★★

추천 대상: 카프카의 변신만 읽어보신 분/ 실존주의나 허무주의에 관심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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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관리인 요제프 K가 체포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느 날 아침, K의 집에 두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은 K를 체포하러 왔다며 당당하게 집안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구속영장은 커녕 그들의 소속도 불분명해 보인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K는 자신이 정말 소송에 휘말린 건지 재차 확인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구두로 첫 심리 날짜를 통보받는다. 그는 법원에 가서 예심 판사, 방청객에게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다.


이 법원에서 행하는 모든 발표의 배후, 그러니까 제 경우에 비추어 말하자면 체포와 오늘 심리의 배후에 어떤 거대한 조직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뇌물을 밝히는 감시인들, 생각이 모자라는 감독관들, 그리고 기껏해야 보통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 예심판사들을 고용……(중략) 그런데 여러분,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상대로 무의미하며 제 경우에서처럼 대개 아무 성과도 없는 소송을 벌이는 것입니다.


K는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을 한다. 감시인들은 집에 무작정 침입하며 K의 물건에 손을 대고 뇌물을 밝힌다. 거기에다가 그가 소송에 걸린 이유, 죄목이 불분명하다. 아무런 의미 없이 법원은 그와 소송을 벌이게 된 것이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법원을 향해 그는 계속 말을 해보고 무죄를 입증하려 하지만, 절차는 의미 없이 길어지고 느슨해지기만 한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보기도 하지만, 변호사의 존재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변호사는 그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정말 실효성이 있는 논거를 갖춘 청원서는, 피고인에 대한 심문 과정에서 개개의 공소 사실과 그 근거 제시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거나 추측이 가능할 때 비로소 작성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는 당연히 매우 불리하고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이것도 다 의도된 것이다. 변호는 사실 법률에 의해 허용되지 않으며, 묵인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 법조문이 적어도 묵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법원의 인정을 받는 공인 변호사라는 것은 없으며, 법정에서 변호사라고 등장하는 자들은 사실 모두 무면허 변호사에 불과한 셈이다.


확실하고 명확한 것같이 보였던 법의 시스템은 쓸데없이 복잡하고 부실했다. K는 이런 시스템을 파헤쳐 나가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척이나 한심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소송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으려 온갖 애를 쓴다. 법원 판사들과 친한 화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법원에서 일하는 레니를 통해 판사들의 환심을 사려고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을 하면 할 수록 무죄를 입증하는 과정이 더더욱 길어져만 간다는 걸 느낀다. 결국 그는 여타 다른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한다. 그는 생일 전날 두 처형인에게 채석장으로 끌려가 칼에 찔려 죽는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땐, 내용이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일 줄은 몰랐다. 소설 내내 그의 죄목이 정확히 무엇인지 명시되어있지도 않고, 소송의 절차도 모호하다. 화가 티토렐리의 방을 신비롭게 묘사해놓은 것도 그렇고, 이상하리만큼 복잡다단한 법원의 시스템도 그렇고 마치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 듯했다.

특히 그의 죄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죄에 대한 힌트는 후반부에서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다.


그저 피고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매력적인 게 죄 때문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나는 변호사로서 이렇게 말씀드릴 수 밖에 없는데, 모든 피고인이 죄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장래에 받게 될 처벌이 그들을 미리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고도 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모든 피고인이 다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그들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소송, 즉 그들에게 제기되어 계속 따라다니는, 그래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소송일 수밖에 없습니다.(229p)


“뭔가 잘못된 겁니다. 도대체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땅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인간입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신부가 말했다. “하지만 죄 있는 사람들이 늘 그런 식으로 말하지요.”
“신부님도 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계신가요?” K가 물었다.(264p)


피고인,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는 죄가 따라온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하는 법이 존재하고 받게 되는 죗값이 존재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 땅에서 태어났기에 죽고 싶어도 멋대로 죽을 수 없다. 인간이 대다수 이행하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된다.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부조리를 겪어야만 하고, 이 부조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뒤 해설을 참고하면 이는 카프카의 생애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는 소설을 시작하기 한 달 전에 파혼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20세기 사회에서 결혼은 시민이라면 당연히 밟아야 할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혼 자체의 부담감, 그리고 자신의 창작 시간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에게 죄책감, 죄의식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당시의 일기를 보면, 파혼이 있었던 베를린의 호텔 ‘아스카니셔 호프’가 ‘호텔 법정’으로 표현되고, 카프카 자신은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이자 동시에 ‘재판관’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일기에는 파혼으로 인한 죄책감, 자기 증오, 자기 처벌의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335p)


카프카의 생애를 읽으면 이 책에서 등장하는 소송이 저절로 이해된다. 한 인간(평범한 인간일 수도, 카프카 자신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소시민일 수도 있다.)이 인생에서 여러 부조리를 겪으며, 탈출하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끝내 무력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소송으로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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