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해질 권리도 권리일까?
본가에서 뒹굴거리다가, 4년 전쯤 읽었던 책을 발견했다. 내용이 흐릿하게 남아 있어서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역시 sf는 자극적이고 재밌다. 이틀 안에 후루룩 완독했다.
소설의 배경은 근미래이다. 과학, 특히 생명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난자 하나로 최대 96명의 인간을 생산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대량생산된 인간은 계급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낮은 엡실론 계급은 생각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태어난다. 그들은 노예처럼 반복 노동을 수행한다. 그다음이 델타, 감마 계급이다. 이들은 엡실론보단 나은 일을 수행한다. 베타 계급은 알파 계급과 원만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수정실 등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가장 높은 알파 계급은 사회의 엘리트이다.
소설 첫부분을 이끄는 버나드는 알파 계급이지만 키가 다른 알파들보다 작아서 소외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야만인 보호 구역에 가보고 싶다거나, 욕정이 아닌 사랑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다른 인물과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그는 레니나 크라운이라는 여성과 야만인 보호구역에 놀러 간다. 그들은 놀러 갔다가 큰 봉변을 맞이하는데, 문명인 출신 베타계급 린다를 만난다. 린다와 그의 자녀 존을 보고는 엄청나게 놀란다. 그럴 법도 한게, 문명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아이를 낳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
때문에 린다는 존에게 모성애와 동시에 수치심을 느낀다. 린다가 존을 두드려 패다가 갑자기 꼭 안아주는 모습에서 이러한 양가성이 나타난다.
버나드 일행과 존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문화를 경험한다. 버나드는 존과 린다의 존재가 자신의 이익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을 예상하고 둘을 문명 사회로 데려간다. 린다는 원래 문명인이었기에, 존은 문명 사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를 허락한다. 둘이 문명 사회로 돌아가 일으키는 여러 사건들이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그들이 돌아설 때 국장이 깊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우리 포드 님의 시절에도 대부분의 경기들이란 기껏해야 한 두 개의 공과 막대기 몇 개, 그리고 어쩌다가 조그마한 그물을 하나 걸어놓는 것 이상은 아무런 시설도 없이 그냥 진행했다는 걸 생각하면 참 이상해. 소비를 증가시키는 데 아무런 기여도 못 하는 복잡한 경기들을 용납하는 우매함을 상상해보라고. 그건 미친 짓이야. ……(후략)
68p
국장의 말에서, 소비를 사회의 제 1순위로 두는 극단적인 가치관을 볼 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사회는 모든 부정성이 제거되어 있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이고, 고통을 최대한 받지 않도록 생애가 설계되어 있어서 사람은 젊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60세에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행복은 소마로 충분히 채울 수 있고, 다른 취미생활이 필요하지 않다.
“글쎄요. 난 이곳에서 당신들이 누리는 그런 거짓된 가짜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차라리 불행해지고 싶은데요.“
274p, 존의 대사
대신 예술이 퇴보했다. 책은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있고, 사람들이 자주 보는 촉감영화는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다. 음악은 합성 음악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존의 표현에 의하면 그리 예술적이진 않아보인다.
예술이 없는 사회.. 무지 당황스러울 것 같다. 물론 소마로 만족할 수 있다면 생물학적으로 멀쩡할 테니까 잘 살 수 있긴 하겠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을까.
“그건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오셀로의 세계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강철이 없으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으며, 사회적인 불안정이 없으면 비극을 생산할 길이 없으니까요.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후략)” 333p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무스타파 몬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을 대로 해요.” 그가 말했다.
3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