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
추천 대상: 고전문학 명작을 입문하고픈 분들, 실존주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책이 두꺼워보여도 해설 등 기타 내용을 빼면 150쪽도 안 된다. 내용이 짧고 굵어 긴 텍스트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드린다. 배울 점도 많은 소설이다.
내가 만약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이방인-시지프신화 순으로 읽었다면, 나는 두 권 모두를 다시 읽어야 했을 것이다. 시지프 신화의 내용 자체는 어렵긴 했지만, 그 책을 먼저 읽은 덕에 이방인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시지프 신화는 ‘에세이’ 형식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침을 준다. 반면 이방인은 '소설'의 형태로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뫼르소는, 이성적으로 살아가려 하나 비이성적인 세상에 잡아먹히는 인간이다.
그는 가식과 거짓말을 혐오한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행복에 충실하다. 그지만 그 행복을 감정으로 표출하진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가 비인간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가 나름 ‘인간적이다’라고 느낀 건, 짤막한 순간에 불과했다. 그의 독백도 어딘가 이상하다. 문장에 ‘역겨웠다’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논리의 비약이 있어보이는 ‘그래서’는 덤이다. 독백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타인을 ‘사물처럼’ 바라본다는 점이다.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의 외양을 묘사하기만 할 뿐이다. 그의 감정에 공감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뫼르소의 중간 생각의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있다. 그래서 그 공백을 독자 스스로가 채워야 한다. 이 점이 내가 처음에 뫼르소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2부로 접어들자, 그와 나의 거리가 점차 좁혀졌다. 그의 심리가 조금씩 이해되었고, 공감이 가는 바도 있었다. 이에는 주변 상황의 영향이 컸다. 2부에서는 뫼르소를 대하는 ‘비이성적인’ 세상이 잘 드러난다. 기독교 문화 하의 법정과 경찰서. 그곳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 사실을 넘어선 거짓을 요구한다. 이 정도는 말해도 돼, 라고 하지만 결국 거짓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법조인들의 모습은 그곳엔 없었다. 과장과 껍데기로 가득 찬 세상 자체가 부조리였다. 뫼르소는 자신에게 닥친 부조리를 인식하고, 이를 저항으로서 대면한다. 자신이 맞닥뜨린 부조리를 '거부'할 줄 알고 이에 반항하는 자세. 이 점이 시지프 신화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다.
재미있다.. 문체도 간결하고 사건이 빠르게 진행된다. 가볍지만 묵직하다. 고전엔 고전의 이유가 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의 부탁드립니다.
그는 원래부터 논리와 사실관계만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감정적인 호소나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재판이 지나가게 내버려 둔다. 이방인이 된 그는 피고인임에도, 재판의 주인공임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변호사와 검사 앞에서 그는 무력해질 뿐이었다. ‘이방인’.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이방인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비이성적인 세상과 단절되어 아무런 권리도 외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법관의 심판으로 뫼르소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다.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예정이다. 이 순간부터, 반항아 주인공 뫼르소는 ‘성장소설’의 주인공으로 바뀐다. 처음 옥에 갇혔을 때 그는 누군가 자기를 잡으려 올지가 너무 두려워 매일 밤 귀를 쫑긋 새운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헉헉거리며 독방 문앞까지 다가가서 불안해한다. 이 모습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다시 침착해한다. 그러고는 생각한다. 자기는 언젠간 죽을 운명이었다. 누구나 받는 사형선고가 자신에겐 20년쯤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무의미한 세계에서 살 이유는 없다고. 그의 생각은 확고해진다. 사제에게 소리를 치는 장면에서 이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내면을 여과없이 토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죽음을 경건하게 기다린다.
뫼르소를 완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이성적인 인물이었다면, 살기 위해 어떻게든 거짓말을 쳐서라도 자신의 무고를 외칠 것이다. 그는 그러한 항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성적이었냐는 물음과 별개로, 그가 부조리하다고 느낀 세상에 저항하고 자신만의 자유를 찾았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삶에 대한 해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