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별점: ★★★★
200쪽 남짓의 짧은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전달한다.
추천하는 대상: '죽기 싫어 산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이반 일리치가 지나온 인생사는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크나큰 굴곡은 존재하지 않는, 평탄하고 적당히 행복한 삶. 그런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런 이반 일리치에게 병이 닥친다. 병은 아무런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을 호소하던 그는 의사를 찾아가고, 비극이 시작된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어야 했을 아내는 이반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녀는 남편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긴 커녕 형식적인 질문들만 던지고, 의사에 처방에 따르라고 그에게 잔소리한다. 소설을 다 읽은 내가 바라본 관점에서, 이반과 아내는 그저 겉모습만 반짝이는 화려한 생활을 위한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했다. 주인공 이반에 있어서 아내는 그저 타자일 뿐이라는게,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 중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그의 아내와 의사는 형식적인 측정치만을 들여다보며, 그의 상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죽음을 지연해줄 약을 처방해준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당사자는 정신적 고통에 휩싸여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어떤 과학적 방법도 죽음을 몇 일, 몇 시간 지연시켜 줄 뿐 죽음 자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나날을 살아오던 이반은, 죽음을 처음으로 생생히 맞닥뜨리고는 패닉 상태에 빠진다. 자신이 살아온 나날을 돌이키며, 진정으로 행복을 느꼈던 날이 그리 많지 않았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이반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야로 과거를 돌아본다. 그는 고위층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기준을 따라 직업과 결혼 상대를 결정했고 그들이 고상하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집을 꾸몄으며, 그들이 즐기는 방식을 따라 ‘품위 있는 외양’의 취미를 가졌다. 그런데 지금 이반은 그들이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현실적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도 그들을 따라 그런 삶을 살아왔던 사실을 깨닫는다. 그동안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가치와 살아온 삶의 방식은 모두 거짓과 기만이었으며, 그 거짓과 기만이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가렸다고 느낀다.(김은진, 2023)
이렇듯 다수의 주장에 천착해 죽음을 회피하던 이반은 결국 죽음을 목도하고 만다.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된 그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그토록 행복하다고 느꼈던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이 어떤 삶의 형식으로 살아간들, 법만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삶이 ‘자기가 원해서’ 살아가는 것인지는 스스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보다 자주 본다. 보여지는 모양새, 다른 이의 행복, 언젠가 올지도 모를 성취를 위해서 말이다. 이반의 독백, 최후를 보면 그러한 삶의 단면은 너무나 어둡다. 현실에 끌려가는 것보단, 현실을 어떻게든 나의 방향으로 끌고 가보려고 하는게 주체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닐까?
죽음을 생각하는 건 우리에게 두려움도 주지만, 동시에 현재의 선택을 현명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