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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남주 Jan 14. 2023

참을 수 없는 흥얼거림

밀란 쿤데라님 대답해 주세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을 쓴 밀란 쿤데라 작가님!

하나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것에 대한 글을 쓰면 제 마음이 좀 나아질까요? 




나에게는 2023년 새해를 맞아 열여섯 살이 된 아들이 있다. 아들은 중2...... 였다. 

초딩이 있고 중딩이 있고 고딩이 있고, 그 계열에서도 유독 "병"을 달고 다니는 학년이 있으니. 온 국민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그 "중2" 말이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2때문이다' 라는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올드한 농담도 있었다.


절대 중이 되고 싶지 않다는, 고기 좋아하는 나의 중2 아들은 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틀어 놓지 않으면 공부가 안 된다고 한다. 백색소음, 잔잔한 음악, 클래식, 집중력을 높여주는 재즈음악...... 이런 거라면 조금은 참을 만 한대, 랩이 나오는 팝송이나 요즘 핫한 노래들이다. 더 기가 차는 것은 그 노래를 듣는 것도 모자라 따라 부른다. 따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온몸을 움직인다.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고, 머리와 몸으로는 리듬을 타며 손으로는 제곱근을 풀고 있는 것이다. 


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이게 과연 수학문제를 푼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민사고 학생들이 '성경'처럼 반복해서 읽었다고 유명해진 책,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박성혁 지음, 다산북스)에도 나온다.

'공부할 마음 있는 놈들의 7가지 습관'

습관 2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한다.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항성년은 태양과 지구와 어떤 항성이 일직선에 놓였다가 다시 그렇게 될 때까지의 시간이다.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했어 우리 왜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그러나 릴리우스는 교회의 요구에 따라 절기에 부합하는 역법을 창출하고자 했기에 항성년을 1년의 길이로 삼을 수 없었다.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그는 춘분과 다음 춘분 사이의 시간 간격이 회귀년이 항성년보다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 줘 이러다 내가슴 다 망가져
항성년과 회귀년의 차이는 춘분 때의 지구 위치와 공전 궤도상에서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현상 때문에 생긴다. 
-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과 2011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 지문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면서 국어 지문을 읽는 동안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이와 같습니다. 뇌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한 일이죠. 이렇게 읽어서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국어뿐만이 아니에요. 하다못해 공식에 숫자를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수학문제 하나를 풀더라도 귀에 꽂은 이어폰은 훼방꾼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노래 들으랴 공식 떠올리야 바빠 죽겠는데 손으로는 문제까지 풀어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게 되요. 신경이 반으로 쪼개져 실수를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하고, 문제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어요.
(중략) 미국의 컨설턴트 제럴드 와인버그는 이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효율이 20퍼센트 뚝 떨어지고,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무려 50퍼센트가 더 떨어진다는 겁니다. 연구를 해보니 '멀티태스킹'은 필연적으로 에너지를 더 소모하게 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 능률과 효율을 싹둑 잘라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밀조밀 공부 계획을 꾸려나가는 내 입장에서 20퍼센트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어폰 꽂고 하는 공부'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마주하고, 맛보고, 재미 붙일 기회를 빼앗아간다는 점이에요. 이게 훨씬 더 나쁩니다. 값비싼 바닷가재로 요리를 한답시고 자극적인 양념과 향신료만 잔뜩 들이부으면 정작 바닷가재 맛은 하나도 즐길 수 없듯이, 공부하는 시간에 음악이라는 양념을 마구 뿌려대면 공부 자체에 맛 들일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됩니다. 공부가 어디까지나 하기 싫은 일, 그래서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앉아 있으려면 이어폰이라도 귀에 꽂아줘야 하는 일에 머무르고 마는 거죠. 내가 공부 맛을 느껴볼 기회를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괜히 텔레비전이 없는 게 아닙니다. 딴 데 한눈팔지 말고, 음식 맛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죠.

나는 이 글에 백프로 공감하는 사람이다. 아들에게 이 부분을 펴서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아들은 고맙게도 읽어 주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음악을 들으며 공부한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밀란 쿤데라 님, 

너무 참을 수 없어서 글로라도 풀고 싶은 마음... 지금의 저와 같은 심정으로 그런 작품을 쓰신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그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 읽어봤습니다. 

그냥 제목만 들어 보았어요. 어떤 문체로 쓰셨는지도 몰라요. 

저는 이쯤에서 저의 화남을 가라앉히고 저를 다독이며 아들에게 짧은 편지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가능한 따스한 말투로요.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중2라는 인생 터널, 가기 전에는 몰랐던, 주변에서 말만 많이 들었던, 직접 들어가서야 제대로 보이던 터널을 드디어 지나왔구나! 차선 변경이 금지된 터널 안에서 너와 나는 서로의 차선으로 건너오지 못했다만, 이제는 터널을 빠져나왔으니 가끔은 엄마가 너의 차선으로 들어가도록 할게. 차선 변경하기 전에 깜빡이 넣는 거 절대 잊지 않을게!!! 그리고 너의 그 흥얼거림을 작년에는 참을 수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도 한 살 더 먹었으니 이해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하지 않겠니?

이제 중3이 되는 아들아! 엄마가 열렬히 응원한다!! 


                                                                                                                    2023년 1월 14일 

                                                                                                                                   엄마가


 



네, 이렇게 쓰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앗 죄송해요 밀란 쿤데라 님!  

저와 지금도 동시대를 살고 계시는군요!!!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위키피디아 검색하다가 알았습니다. 

1929년 4월 1일 생~. 

처음에 물결무늬(~) 보고 깜짝 놀랐고, 이내 너무 반갑고 그냥 좋네요.

살아가고 계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참을 수 없는 것' 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마다 작가님이 떠오를 것 같아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꼭 읽어 볼게요!!!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년) :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역사의 상처라는 무게에 짓눌려 단 한 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 보지 못한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다룬 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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