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어느 바쁜 날, 사회복무요원이 서류를 든 손을 유난히 흔들어가며 사건 하나를 가져왔다.
“어머, 자기. 외국에서 들어온 사건이네. 어쩌면 좋아?”
근로감독관 일도 적응이 안 되지만, 나보다 열일곱 살 어린 사회복무요원이 나를 ‘자기’라 부르는 것과 그의 반말투는 더더욱 적응이 안 된다.
사건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국인 근로자가 같은 한국인 사업주를 상대로 신고한 것이었다. 머릿속엔 발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잠시 스쳤지만, 사무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싸우는 소리 덕분에 금세 현실로 되돌아왔다.
사업주는 한국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해외에서 근로자를 만나, 건설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업무를 두 달 정도 시켰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가 무산되자, 사업주는 약속한 급여를 주지 않은 채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근로자가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고, 두 달 치 월급 받으러 한국까지 일부러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인지, 임금 지급을 계속 미루다 이제는 그냥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 근로자 출석이 힘들고, 증거가 부족해서 해결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노동청입니다. 사장님 계세요?”
사업주 회사에 전화를 걸자 직원이 말했다.
“사장님 부재중입니다.”
“언제 돌아오시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몇 번이고 전화했지만 매번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사업주는 부재중,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토요일에 출근한 날, 문득 그 사건이 떠올라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주말엔 관공서 전화가 아닌 걸로 생각해 받지 않을까 하는 얕은 기대였다.
“네, 여보세요?”
중년 남성이 받았다.
“노동청입니다. 사장님이신가요?”
“아… 아니오. 사장님 없습니다.”
뭔가 찜찜했다.
“그럼 지금 받으신 분은 누구시죠?”
“에… 경빕니다! 경비!”
내가 의아해서 “네?”라고 하려던 찰나에 전화가 뚝, 끊겼다. 7명이 근무하는 소규모 회사인데, 주말에 경비원이 사무실 전화를 받는다? 이상해서 다시 전화를 두 번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사업주는 출석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이 지금 해외 출장 중이라 처리하기 어려워요.”
회사로 전화했더니, 이번에는 해외로 갔다고 했다. 신고한 근로자에게 사업주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 직접 전화를 걸었다. 로밍 전화 특유의 연결음이 들렸다. 해외에 간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사업주는 전화를 받았지만, 묵묵히 내가 먼저 말하길 기다렸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입니다. 이명수 씨 임금 체불 건으로 전화했습니다.”
그 순간, 사업주는 뜬금없이 외쳤다.
“여보세요? 창식이냐? 창식아! 여보세요?”
얼마 전 경비라던 그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해외에서도 아는 사람의 번호라면 누구인지가 정확하게 표시되는데도, 사업주는 조카인지 친구인지 모를 '창식이'를 갑자기 소환하며 안 들린다는 듯 어설픈 연기를 하더니 끊어버렸다. 그가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스토커가 된 것처럼 여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물론 그는 받지 않았다.
일곱 번째 전화번호를 누르며, ‘내가 하는 행동은 과연 적극 행정일까, 아니면 행정권 남용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분노와 자책이 뒤섞인 감정이 일어날 때였다. 갑자기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국제전화였다.
“방금 돈이 입금됐어요. 고맙습니다.”
신고한 근로자의 목소리였다. 사업주는, ‘성질 더러운 공무원이 진짜 귀찮게 하네.’라고 생각하며(아니면 더 심한 욕설을 내뱉으며), 앞으로 더 성가시게 굴까봐 계좌이체를 해 버린 것 같았다.
안도감에 몸이 풀려 의자에 기대니 동료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상황을 설명하니,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전화로 쉽게 해결했네. ‘말로 감독관’이구먼!”
‘말(言)로 감독관’이란, 전화나 합의로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는 감독관의 속칭이다. 반면, ‘글(文)로 감독관’은 모든 걸 문서로 처리한다. 당사자를 출석시켜 조서를 쓰고, 보고서를 정리하며, 검찰 송치 서류까지 열심히 만든다.
‘말로 감독관’은 사건을 빠르게 해결하지만, 주로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양쪽을 설득해 합의를 끌어내기 때문에 근로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글로 감독관’은 사건 처리 시간이 오래 걸려, 생계가 어려운 근로자를 빨리 구제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나는 말재주가 없어, 주로 서류를 만드는 편이다. 근로자가 원하는 충분한 금액으로 빠르게 합의시키는 것은 모든 감독관들이 바라는 일이지만, 참 쉽지 않다. 이 사업주처럼 귀찮아서라도 빨리 주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