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근로감독관
점심시간, 감독관들이 모여 수다를 떨다 이상한 주제로 빠졌다. A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솔직히, 마음은 가끔 사업주 편일 때도 있어. 근로자 중엔 법에 없는 걸 억지로 요구하거나, 증거가 없어서 안 된다고 설명해도 듣질 않는 사람이 있잖아. 그럴 땐 사업주 말이 더 이해될 때도 있고.”
그러자 B가 단호히 맞섰다.
“그건 좀 아니지. 나는 무조건 근로자 편이야. 근로감독관이라면 사업주 변명보다는 근로자 말을 더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 아냐? 기본적으로 근로자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옆에서 듣고 있던 C가 이들의 대화를 끝내려는 듯 입을 열었다.
“야, 그냥 네 편 해라. 근로자 편도 아니고, 사업주 편도 아니고, 네 편. 네 업무가 줄어드는 쪽으로도 생각하라고. 둘 다 그런 고민만 하다가 사건 처리기한 넘기고 엄청 쌓아두고 있던데.”
인간은 대부분 절실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차분하게 행동하기 어렵다.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말이다. 그러한 절박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마음이, 직업적인 사명감을 높이고 업무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감정이 고조된 사람을 대하다 보면, 감독관의 컨디션에 따라, 그것이 일종의 피로감이나 스트레스로 몰려올 때가 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이나 근로자들이 ‘근로감독관이 사업주 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근로감독관이라는 작자가 해서는 안 될 망언’이나 ‘막말’이라는 비난을 쏟아부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A의 말은 단순히 ‘사업주 편’이란 뜻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업주들에게 전화해, 빨리 돈 주라고 으름장을 놓고, 근로자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문제는, 근로자에게도 잘못이 있는 경우다.
가장 흔한 사례는 근로자가 무단결근에 전화도 받지 않다가 문자 한 통만 남기고 갑작스레 퇴사한 경우다. 사업주는 대체 인력을 제때 구하지 못해 사업상 손해를 보고, 인수인계도 없이 사라져버린 탓에 한동안 고생한다. 이때 근로자는 민망함에 사업주에게 돈을 요구하지 못하고, 마지막 달 월급을 못 받았다며 바로 노동청에 신고한다. 사업주는 이 상황에 분노한다.
“전화 한 통 없이 신고부터 한 놈한테 내가 왜 돈을 줘야 해? 차라리 벌금 내고 말지!”
근로감독관은 이런 사업주를 형사처벌하고 사건을 종결해버리면 끝이지만, 그렇게 하면 양쪽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고, 근로자의 권리구제가 늦어지거나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청에 신고하기 전에 근로자가 먼저 사업주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직접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업주가 이를 거부하면 그때 신고하면 된다. 그러면 사업주도 신고당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노동청 연락만 받고도 출석일 전에 전액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정공법이 가장 해결이 빠르고 양쪽 다 감정 소모가 덜하다.
어떤 근로감독관은 책상 앞에 이런 문구를 붙여놨다고 한다.
“근로감독관은 법 위반을 처벌하는 사람입니다. 돈 받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문구를 보면 근로자로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근로자 대부분은 돈을 받기 위해 신고하는 것이지, 사업주 처벌만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글은 근로자의 책임과 역할도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한 사건을 처리하는데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계가 있어, 양쪽의 합의가 힘든 경우에는 사법처리하고 민사소송 절차를 안내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근로자에게 일부 잘못이 있는 경우라도, 그에게 임금을 받을 권리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그 권리를 찾아주는 것 역시 근로감독관의 몫이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송곳』에서 극중 인물(노무사 고구신)이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지키는 건 인간이오.
착하고 순수한 인간 말고,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